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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어느 틱톡커의 백만뷰 영상

  •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1

가만 보면, 영국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듯하다. 영국 음식을 놀리거나 흉보는 데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나선다. 한편, 영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남들이 본인들을 어떻게 보고 뭐라 말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들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욕했다는 사실이 영국에서는 자주 기삿거리가 된다.

최근 한 미국 여성이 틱톡에 영국 음식을 비난하며 올린 동영상이 매우 바이럴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됐다. 미국 남부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은 뉴저지에 산다는 24세의 이 틱톡커는 영국에 놀러 다녀왔다고 한다. 영국에 사는 외국인이 아니라 ‘진짜’ 영국인들의 소개로 몇 군데 레스토랑에서 영국 음식을 먹었다고 했다. 그 음식 경험을 토로하는 2분 49초짜리 동영상에서 이 여성은 영국 음식에 대한 혹평을 쏟아냈다. “영국 음식은 도대체 양념이 안 쳐져 있어”, “정말 끔찍해”, “영국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는다는 건 도박에 가까운 일인데 그나마 어디가 제일 나아. 하지만 거기도 미국의 어떤 식당이랑 비슷한데 훨씬 못해”, “중국 음식을 시켜 먹어봤더니 그건 자살행위였어.” 심지어 구토하는 흉내까지 낸다.

이 동영상에는 영국 음식의 형편없음에 대하여 동의를 표하고 같이 놀리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영국 음식은 어떻게 눅눅한 동시에 말라비틀어졌을 수가 있느냐’는 코멘트에는 수천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영국인들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한 것은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코멘트에는 ‘좋아요’가 만 삼천 개가 넘게 달렸다.

물론 이 레스토랑들 내지 영국 음식을 옹호하는 목소리 또한 간간이 등장했다. 이 여성이 먹으러 다녔다는 음식점들은 평범하고 대중적인 체인 레스토랑들이다. 가성비만 따지면 좋은 편이지만, 특별히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 정도 가격의 그 정도 식당을 가면 그 정도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코멘트도 있었는데, 꽤나 타당한 지적이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영국인들은 본인들에 대한 나쁜 평가에 대해서도 꽤나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은 누가 영국 음식을 부당하게 욕하더라도 집단적으로 반발을 하거나 무조건 영국 음식 편을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서 며칠간 한국에 놀러 왔다가 무난하고 대중적인 김밥이나 떡볶이 등을 판매하는 분식 체인점에 다녀온 어느 외국인이 한국 음식 전반을, 그것도 악의적으로 평가한다면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훨씬 격렬하지 않을까 싶다.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2

흥미로운 것은, 이런 단순하고 아무 내용도 없으며 타당하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발언이 순간적이라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주목을 받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음식이란 어느 정도 역사와 환경의 반영물이고 따라서 해당 사회의 맥락을 알지 못하면 왜 그런 음식을 먹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거나, 무엇이 ‘맛있다’고 느끼는 것 역시 학습의 결과라거나 하는 등의 장황하고 진지한 설명은 저런 틱톡 동영상이 소위 대박을 치는 이 시대에서는 설자리가 없다.

저런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 시대에 주목 받기 위한 일정 공식이 추려진다. 우선, 취하는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 즉, 동영상에서 나타나는 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체인 레스토랑만 몇 군데 가봤을 뿐인데 일관되게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고 한다. 주장을 펼칠 때 사용하는 단어는 쉬워야 한다. 태도는 감정적이고 과격한 것이 유리하다. 조심스럽게 균형을 취하려 하거나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는 건 오히려 인기가 없다. 대체 누구 편이냐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동영상에 달리는 댓글들 역시 웃기고 재치 있고 독하면 최고다. 받게 되는 ‘좋아요’가 몇 개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동영상을 만들어 사람들이 서로 싸워대고 그래서 화제가 되면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주류 매체에 언급되고,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저 여성은 오천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는데 해당 동영상은 백만 번이 넘게 시청되었다고 한다. 다른 동영상에 비해 매우 성공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니 더욱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이쯤 되면 주목을 받는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개인의 소셜 미디어 내용을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이제 영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내용을 그대로 베끼면 한 꼭지의 기사가 된다. 작성자와 인터뷰를 하거나 사실 확인을 하는 등의 전통적 기사 작성 방법은 이제 시류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그동안 “본지는 모 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아직 회신을 받지 못했다”라는 류의 변명과도 같은 문장을 붙여 면피를 해왔으나, 이제는 그런 시늉조차 잘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국 언론의 경우 매체명을 보고 내용을 신뢰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위와 같이 아무 내용이 없는 기사가 <BBC>나 <타임스> 또는 <가디언>에까지 등장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언론기사 역시 시장에 내놓는 상품이다. 독자가 가볍고 흥미 당기는, 얄팍하고 휘발적인, 편가르기 하며 욕하기 좋은 기사만을 소비한다면, 독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가 더욱더 많이 생산되고 그런 매체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한국 음식이 점점 달고 맵고 짜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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