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전쟁의 피해자는 늘 민간인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국제사회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취재를 갔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지라 저도 관심 있게 전쟁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취재 다녔던 기간 동안 가자지구는 7번 정도 봉쇄되었습니다. 모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갈등 때문입니다. 적대 세력들끼리 수십 년을 대치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밑 협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는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투입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여성들도 징집 대상입니다. 이스라엘 현역 군인은 16만 명인데 이중 남자가 10만 명, 여성이 6만 명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의 군 복무 기간은 남자는 2년 8개월, 여군은 비전투병 2년, 전투병 2년 8개월입니다. 지난 2018년까지는 복무 기간이 3년이었는데, 그해 줄어서 2년 8개월이 되었습니다. 복무 기간 중에는 급여도 지급되는데 여군은 150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남자는 100% 전투병이지만, 여군의 94%는 행정병, 취사병, 사진병, 의무병과 같은 비전투병입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여군들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군이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군인들인지라 무척 경직되고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병영에서 만난 이스라엘 여군들은 마치 소녀 같았습니다. 그들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아 정말 해맑고 밝은 아가씨들이구나”였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떨고 웃는 모습이 상큼하고 밝아 보여서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 청춘들의 연애 이야기 등 끊임없는 그들의 수다에 마치 여학교를 방문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전투에 여군들이 중심되어 나가지는 않습니다. 비전투병이 많기에 주로 후방에서 물건을 나르고 경계근무 서는 일을 합니다. 팔레스타인 시위자들 앞에서 여군들이 고무탄을 쏘기도 하는데, 그거야 비무장 민간인들 앞이니 무장한 여군들이 더 유리해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한 이스라엘 여군이 비키니를 입고 총을 멘 모습이 올라왔는데, 저는 ‘에고...한참 놀 나이에 군대로 끌려와서 젊음이 넘쳤구나’하고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군 중 소질 있는 약 6% 정도만 전투병인데, 자기들끼리 웃으며 군대에 소질 없어야 한다며 농담을 합니다. 자기들은 군에 오래 있기는 싫다고 합니다.
여군이나 여군 징집 대상자 중 임신을 하면 바로 군 면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징집 대상자인 여성이 군대에 가기 싫으면 빨리 남자를 만나 입대 전 결혼을 하거나 임신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여성이라고 다 군대에 가는 건 아니고, 현역 대상 중 55% 수준만 입대합니다. 이렇게 반 정도만 여군으로 징집이 되니 이스라엘 정부는 여군 입대 시 혜택을 많이 줍니다. ‘평생 의료보험료 면제’, ‘대학교 학비 전액 면제’, ‘기숙사비 무료’ 등입니다. 나름 솔깃한 조건이라 이스라엘 영주권자들도 입대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여군 징집률이 55%라는 건, 전반적으로 군대 가기를 꺼리는 분위기라는 거 아닐까요? 이스라엘 시민들 전체가 단결하여 치르던 중동 전쟁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여군들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 입장에선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젊은 MZ 세대 이스라엘 청년들은 예전처럼 안보로 인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 침해당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태어나서부터 늘 있던 분쟁에 진절머리를 칩니다. 하마스와의 갈등으로 로켓이 날아오고 준전시 상황이 되는 자신들의 삶이 피곤하기만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늘 안보를 내세우며 시민들에게 손해를 감수하라는 입장입니다.
사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나기 전 이스라엘 정부는 큰 위기였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경각에 달했었기 때문입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파에 유리한 사법 개혁안을 밀어붙였고 이에 반대한 이스라엘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들은 가장 충격적인 반정부 시위 구호는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수치”입니다. 그의 든든한 배후인 이스라엘 군까지도 등을 돌릴 정도로 실각 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네타냐후 총리입니다. 그는 이번 전쟁으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 하마스와의 대결 구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마스도 정치적 수혜자입니다. 2000년대 중반 딱 한 번 팔레스타인의 정권을 창출하고 그 뒤로는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잊혀 가던 무장 정파였지만, 이번 전쟁으로 자신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내세운 것입니다. 둘 다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양쪽 국민들만 대거 희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은 하마스 대신 폭격을 맞아야 했고, 이스라엘 시민들은 반정부 시위도 멈추고 일부는 하마스의 인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를 싫어하는 이스라엘 시민들이 늘어가고 하마스를 증오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제가 겪은 전쟁의 경험에서는 늘 이렇게 힘없는 약자들만 죽어나갔습니다. 현대 무기는 성능도 좋아서 민간인들의 희생은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전쟁을 하는 당사자들은 다들 자신이 피해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반격이라고 주장합니다. 가해자는 없고 하마스도 이스라엘 정부도 피해자 행세를 하며 전쟁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진짜 피해자는 바로 힘없는 양쪽 민간인들인데 말입니다. 이제 이-팔 분쟁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민간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세계 시민들이 그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편에 서서 전쟁을 반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날 우리에게 전쟁이 닥쳤을 때 우리 민간인들을 세계 시민들이 편들어 주지 않겠습니까.
웹진 <언론사람>이 이번 12월호를 끝으로
뉴스레터로 전환됩니다.
그동안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코너를 연재해주신
김영미 PD님과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4년 1월, 뉴스레터 <언론사람>으로
새롭게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