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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반유태주의

  •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1

역사적 사실 하나. 영국은 전통적으로 유태인을 매우 심하게 배척하던 사회였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유럽 사회가 있기는 한가 싶지만. 아무튼 대략 11세기 초에 유태인들이 이주해 온 이래 영국은 이들에게 심한 차별과 박해를 가했다. 유태인들이 종교행사에서 기독교인 어린이를 죽인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수차례의 대량 학살을 자행했는데, 주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던(기독교도에게는 금지된 일이다) 유태인에게 진 빚을 갚기 싫을 때 저지르는 일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찍이 13세기에 헨리 3세는 ‘유태인들은 노란 다윗의 별 모양의 표지를 달아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의 나치가 유태인들에게 달도록 했던 바로 그 표지와 매우 유사한 모양이다. 이윽고 13세기 말, 영국은 모든 유태인을 영국에서 쫓아내기에 이른다. 유태인들이 다시 공식적으로 영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은 17세기 중반 크롬웰에 의해서다.

아무튼 이제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여 영국에는 반유태주의가 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영국인들 스스로는 주장한다. 그러나 몇 년 전 유태인인 동료와 그가 겪은 차별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백인 남성으로서 백인 중심의 영국사회에 살고 있고, 또한 유태인이 세계를 움직이는 실질적 세력이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은지라, 그가 영국에 사는 유태인으로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해서 살짝 놀랐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영국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영국 사회로부터 전적으로 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2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이 보복에 나선 이래, 런던에서는 10월 중순부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주말마다 연달아 열리고 있다. 10월 셋째 주 주말에 모인 시위 인파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MET)이 추산하기로 약 십만 명에 달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총리 공관이 있는 다우닝가까지 행진을 했다. 천 명 이상의 경찰이 동원된 이 대규모 시위에서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거나 구조요원을 공격하는 등 법을 어긴 단 열 명만 체포되었다고 하니, 상당히 질서 잡힌 분위기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도중 몇몇 사람들이 ‘지하드’라는 구호를 외치고,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우리라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하드’라는 용어나 해당 노래는 특히 많은 유태인들에게는 반유태주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또한 ‘지하드’는 일반적으로 테러와 연관이 있는 단어로 해석된다는 것이 MET의 설명이다. 영국 총리인 수낙은 행진 도중 ‘지하드’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영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해당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내무부장관은 위 노래가 이스라엘을 파괴하자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증오 범죄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여, 저런 행위를 하는 경우 체포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현행법 하에서도 이 같은 행위는 체포 가능하다며 경찰의 대응을 비난하는 주장 또한 있었다.

언뜻 영국이 왜 이리 유태인들만을 감싸고도느냐는 생각도 들 법하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영국에서 살고 있는 유태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에 기초한 것이다. MET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후 런던에서 반유태주의적 증오범죄는 1,350% 증가했다고 한다. 한편, 반무슬림 증오범죄 증가율은 140%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 중 최소 12명이, 하마스에게 납치된 사람 200여 명 중 최소 5명이 영국 국적자다. 심지어 이들의 친인척은 영국에 있으면서도 심한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유태인들이 심한 박해를 받았고, 이들이 논란 속에서 건립한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팔레스타인들을 심하게 억압했고, 그간 세상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하는 비극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고려하여 어느 한 쪽을 지지하고 다른 쪽을 비난하기로 결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을 지지하고자 하든 비인간적인 잔학한 행위를 눈감거나, 오로지 유태인 또는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개인이 공격당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한편, 영국 이민부 장관은 영국에 방문객으로 오는 사람이 반유태주의적 선동을 한다면 그 행동이 범죄에 달할 정도가 아니어도 추방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이에 대하여 <타임즈 라디오>가 ‘시위 현장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드는 것만으로도 비자가 취소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며 표현의 자유를 믿는다고 말했다. 다만, 테러를 정당화하거나 심하게 반유태주의적인 내용의 슬로건을 표방하거나 하마스를 칭송하는 등의 발언을 영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경우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에 있는 이상 ‘영국의 가치’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이 사태가 진정되기 전에 영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까짓 추방당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 아닌 이상 과격한 구호를 따라 외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할 일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그저 따라 한 거라는 항변이 통할 수 있을지는 운에 맡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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