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media of the world
뉴스 회피와 퍼즐 성공
- 글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약 100년 전인 1924년 11월 17일. <뉴욕타임스>에 ‘광기의 익숙한 형태’라는 제목의 짤막한 사설1) 한편이 실렸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의 상흔으로 힘들어하던 미국 시민들에게 정신적 위안처가 되어주던 신문의 ‘크로스워드 퍼즐’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롱의 강도는 높았고, 열거된 어휘는 거칠었다. “완전히 무의미한 단어 찾기에 지금 동일한 사람들이 동일한 죄악스러운 낭비를 저지르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듬해 3월에도 뉴욕타임스는 “유해할 뿐 아니라 어떠한 교육적 효과도 없다”라고 크로스워드 퍼즐을 깎아내렸다. 반황색저널리즘과 금욕주의를 표방해왔던 뉴욕타임스의 눈엔 어쩌면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그저 낱말 몇 개 맞추는 것이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신기루 같은 명분이 미국의 호황을 위태롭게 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었을 수도 있다. 땀 흘려 노동에 매진해야 할 시점에 크로스워드 퍼즐에 정신이 팔려 게으름을 유혹하는 황색저널리즘의 행태가 내심 마뜩잖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로스워드 퍼즐의 교육적 효과는 나름 입증된 상황이었고, 신문의 반복적 소비를 끌어내는 데 톡톡히 기여도 하고 있었기에 퍼즐의 대유행은 좀체 멈춰 서지 않았다.
뉴욕타임스가 꼿꼿하던 자존심을 꺾고 크로스워드 퍼즐을 지면에 게재한 것은 이로부터 18년이 지난 1942년 2월.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포격으로 미국이 참전을 결심하게 되자, 뉴욕타임스도 마침내 크로스워드 퍼즐을 지면에 인쇄하기 시작했다. 명분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이 가져온 미국 시민들의 우울감을 조금이라도 달래보기 위한 차원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마가렛 페더브리지 파라(Margaret Petherbridge Farrar)’를 첫 퍼즐 에디터로 임명하고 그에게 퍼즐 게임 편집의 전권을 건넸다. 그리고 ‘뉴욕타임스가 하면 퍼즐도 달라야한다’는 미션을 부여했다. 그는 크로스워드를 처음으로 발명한 ‘아더 윈’의 비서 경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를 능가할 만큼 탁월한 퍼즐 게임 개발 실력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2). ‘크로스워드의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야말로 퍼즐 개발의 대가였다. 그는 1969년 뉴욕타임스에서 퇴사할 때까지 크로스워드의 새로운 황금기를 열어젖혔다.
디지털 시대에 크로스워드 퍼즐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은 곳도 뉴욕타임스였다. 뉴욕타임스는 ‘게임’이라는 독립적인 디지털 섹션을 통해 크로스워드 게임을 쉼 없이 변주시켰다. 고전격인 ‘크로스워드’를 비롯해 ‘미니’, ‘스펠링 비’, ‘수도쿠’, ‘커넥션’까지. 심지어 워들(wordle) 게임을 인수하면서 게임 제품의 규모를 더욱 성장시켰다3). 그리고 크로스워드 게임을 유료구독 번들 상품에 편입시켜 뉴욕타임스 구독 수익을 가파르게 성장시키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CEO인 ‘메러디스 코빗 레비엔’은 지난 2023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현재 게임에 대한 방대한 사용자층은 게임 구독과 번들 모두에 계속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라며 퍼즐 게임이 구독에 미치는 긍정적 기여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크로스워드 퍼즐의 인기를 ‘뉴스 회피’와 관련해 풀이해 보면, 뉴스 산업에 던지는 몇 가지 시사점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뉴스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Skovsgaard. et al. 2020). 2017년 일본의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은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다양하게 섞어서 사용자들에게 노출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야후는 이 실험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선호도가 높은 사용자들이 뉴스를 통한 학습 효과가 높아진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만 소비할 것 같은 사용자들에게 뉴스가 우연찮게 노출되면서 이를 통한 지식의 자기학습 효과가 높아졌다는 것이다(Kobayashi. et al. 2020). 소셜미디어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혼합해서 제시했을 때 의도하지 않는 뉴스 소비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처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뉴스의 균형적인 배분은 뉴스에 관심이 없거나 회피하려는 수용자들이 다시 뉴스를 만나고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뉴스 사이트 방문 습관을 형성시키고 떠나지 않도록 유지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높은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언론사들의 디지털 콘텐츠 솔루션을 개발하는 벨기에의 기술기업 트와이프(Twipe)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퍼즐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이유는 일상적인 뉴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뉴스를 읽는 휴식 시간에 크로스워드를 기대하는 습관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4). 크로스워드 퍼즐이 지닌 오락적 요소, 긍정의 경험, 생활의 팁 학습 등이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면서 독자들을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 영국의 텔레그래프 등은 독자들의 사이트 방문 습관 형성에 있어 퍼즐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구독자 이탈을 완화하고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퍼즐을 계속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수용자들의 뉴스 회피는 국내 뉴스 산업을 휘감은 지 오래다. <디지털뉴스리포트>5)에 따르면, 비록 2022년보다 상당 수준 완화되긴 했지만 뉴스 수용자들의 절반 정도가 뉴스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시기마다 들쑥날쑥하지만 뉴스 회피의 정도가 낮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 구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뉴스 사이트를 습관적으로 방문하는 사용자 비중이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더 높은 품질의 뉴스로 수용자들을 유인해 보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에는 정치적 양극화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보도까지 늘어나면서 뉴스는 온통 부정적인 헤드라인으로 가득 차있다. 자신의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지인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기 위해 뉴스를 의도적/비의도적으로 회피할 조건은 더 늘어난 형국이다.
이러한 가운데 <경향신문>은 ‘칸업’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뉴스형 퀴즈 서비스를 시작했다. 탈포털 전략 차원에서 구상된 콘텐츠다. 크로스워드 형태를 취하진 않았지만 게임화 요소를 도입해 흥미와 경쟁을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 탈포털은 그 특성상 독자 습관의 재형성을 전제로 하기에 단기간에 완결되긴 어렵다. 하지만 크로스워드 퍼즐이 역사적으로 증명해 낸 독자들의 습관형성 효과와 긍정적 경험을 다시 주목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퍼즐을 혐오했던 뉴욕타임스가 퍼즐로 구독의 새 전기를 맞이했듯, 국내 언론사들도 잃어버렸던 엔터테인먼트 DNA를 되살려 뉴스 직접 소비의 황금기를 재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조
- https://timesmachine.nytimes.com/timesmachine/1924/11/17/104270030.html?pageNumber=18
- https://en.wikipedia.org/wiki/Margaret_Farrar
- https://www.nytimes.com/2022/01/31/business/media/new-york-times-wordle.html
- https://www.twipemobile.com/how-can-publishers-use-games-and-puzzles-to-increase-subscribers/
- https://www.kpf.or.kr/synap/skin/doc.html?fn=1695345157240.pdf&rs=/synap/result/research/
참고 문헌
• Kobayashi, T., Hoshino, T., & Suzuki, T. (2020). Inadvertent learning on a portal site: A longitudinal field experiment. Communication Research, 47(5), 729-749.
• Skovsgaard, M., & Andersen, K. (2020). Conceptualizing news avoidance: Towards a shared understanding of different causes and potential solutions. Journalism studies, 21(4), 459-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