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진료는 의사에게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여러 나라를 취재 다니는 게 직업이다 보니, 선진국보다는 조금 낙후된 나라에 많이 갑니다. 그런 곳은 한국에 당연하게 있는 것들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먼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의료 영역입니다. 선진국 중에도 의료비가 비싼 곳들이 많지만, 선진국이 아닌 나라도 의료비가 너무 비쌉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천원 선에서 진료비를 내지만 제가 얼마 전 갔다 온 아프리카 짐바브웨만 하더라도 진료 접수비만 80불입니다. 거기에 약값, 검사비, 처방비에 이것저것 합치면 아무리 간단한 진료라도 400불 정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짐바브웨 사람들의 한 달 월급이 보통 200불 이하이기에 월급의 두 배를 진료비로 한방에 써버릴 수도 있습니다. 비단 짐바브웨뿐만 아니라 다른 저개발 국가들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보고 놀랄 만합니다. 이런 나라 사람들은 어지간한 병과 고통은 집에서 쉬면서 감내해야지 감히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합니다.
아이 출산은 동네 할머니가 담당합니다. 약은 무당이 담당하기도 합니다. 무당은 푸닥거리도 하고, 이상한 풀과 벌레를 말려 간 것을 줍니다. 도무지 의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터무니없어 보였습니다. 한창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기에 라이베리아에서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당을 찾아갑니다. 제가 “의사에게 가야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면 막 뭐라고 합니다. 병을 의사가 어떻게 고치냐고, 무당이 고쳐야한다고 하면서요. 의사가 오히려 병을 몰고 온다고 일장 훈계를 합니다. 하지만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무당의 푸닥거리와 민간요법에도 죽어갔습니다. 심지어는 환자를 봐준 무당도 에볼라 바이러스로 죽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겨우 단순 열과 감기로도 사람들은 마구 죽어나갑니다. 감기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더군요. 거기에 물도 깨끗하지 않아 수인성 전염병과 결핵 등 우리가 후진국형 질병이라고 부르는 병들이 수시로 창궐합니다.
게다가 약도 의사도 귀합니다. 소말리아에 처음 취재를 갔을 때 폐렴에 걸렸습니다. 제가 가진 약 중에 감기약으로 먹는 아스피린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걸 먹고 버텨봤지만 너무 아프고 기침도 잦아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가디슈를 싹 다 뒤져서 겨우 의사 한 명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가정집 비슷하게 진료실을 만들어놓고는 청진기도 없이 제 숨소리를 체크하고 심장 박동도 재더니 폐렴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먹은 약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제가 아스피린을 먹었다고 하니 소말리아 의사가 “그거면 됩니다. 아주 귀하고 좋은 약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겨우 아스피린 밖에 못 먹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의료 기술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말리아 전체를 뒤져봐도 아스피린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테고, 이보다 더 싼 약이 있다고 해도 겁나서 먹지 못 했을 겁니다.
그래서 취재를 갈 때 최대한 많은 약을 들고 다닙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온갖 진통제와 감기약, 해열제, 소화제, 지사제 등 엄청난 양의 약을 챙겨 다닙니다. 특히 해열 진통제인 이부프로펜 500정 짜리 대용량은 꼭 들고 다닙니다. 취재하다가 아파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만나면 이거라도 먹으라고 드립니다. 감기나 몸살 걸린 사람에게 이부프로펜은 즉각 효과 만점입니다. 가난하고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평생 약을 안 먹어본 사람들이라 약 효능이 제대로입니다. 다 죽어가며 늘어져 있던 환자들이 이 약을 먹고 난 다음날이면 벌떡 일어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놀라운 명의라고 생각합니다. 제 취재가방에 약을 챙겨 다녔고, 취재가 아니라 진료를 다닌듯한 기억도 많습니다.
이러니 본의 아니게 명의로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이 약 달라고 숙소로 찾아오고, 취재를 나가기도 전에 아침부터 저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취재를 갔다가 구름처럼 모여든 환자들 때문에 정작 취재는 못하고 일단 피신한 적도 있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러다 불법 의료 행위로 체포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저는 의사가 아니다”라고 항변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래서 현지에 봉사를 나온 의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이부프로펜을 나눠주면 불법행위가 되느냐고 말입니다. 그 의사는 “법을 따져봐야겠지만, 당장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약을 줄 수만 있다면 주는 게 맞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걱정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 의료계와 법조계에 문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약국에서 구입한 거면 괜찮다고 합니다. 그 후 저는 아파서 힘들어하는 분에게는 계속 약을 드렸습니다. 분쟁 현장에서는 수많은 의료진들이 봉사를 합니다. 평범한 사회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발생합니다. 그런 위험한 곳이라도 진료가방을 들고 서슴없이 뛰어드는 의사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습니다.
새가슴 김피디의 소망은 세계 어디에서라도 아픈 사람들이 현대의학에 의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대에 의료행위와 박애정신을 배우는 과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주민이 ‘밀가루 열 포대보다 의사 한 명 데리고 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새가슴 김피디는 지금도 가방에 약을 많이 챙겨 다니지만 ‘진료는 의사에게’ 받는다는 당연한 말이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