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교복 신발이 불러온 댓글 논쟁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영국은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 새로운 학교로 진학하는 것도 9월이다. 이때 새로운 학교의 교복을 장만해야 하는데, 학교에 따라서는 구두나 양말까지도 정해져 있을 정도로 교복에 관한 규칙이 엄격한 곳도 있다. 새 학교가 아니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이니 교복을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영국 날씨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지라, 9월 초반은 더울 수도 있고 추울 수도 있다. 새 학년을 시작하는 시기에 복장에 관한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일 년 간의 분위기를 잡아보겠다는 학교 측과 학생들 및 부모들 간 갈등이 가장 강하게 터져 나오는 시기인 셈이라 교복 분쟁을 둘러싼 뉴스가 많이 등장하는 때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초에는 런던 북동쪽에 있는 한 중등학교에서 개학 첫날 신발 때문에 학생들을 대거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기사가 있었다. 나이키의 목 높은 운동화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슬립 온 슈즈 같은 것들이 학생들에게 적절한 신발이 아니라며 상당수의 아이들을 수업도 받지 못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었다. 기사의 제목만으로 보기에는 학생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신발을 신었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귀가 조치하였다는 것으로 보였다. 이건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의 가격이나 브랜드를 이유로 학생들이 신지 못하게 하는 일은 80년대 한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처음 들어본다.
기사에 등장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교의 조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들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등교했다가 쫓겨 왔다는 한 부모는 늘 신는 신발인데 뭐가 문제냐는 의문을 표시했다. 교복 값도 비싼데, 신발도 새로 사라는 말이냐는 의문도 있었다. 직장에서 급히 반차를 내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했다는 부모도 있었고,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으로 인하여 아이들의 학습 상태가 부실한데 겨우 신발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니 말이 되느냐고 하는 부모도 있었다. 해당 학교가 있는 지역은 GCSE(중등교육 과정을 마치면 치러야하는 자격시험이다) 성적이 가장 낮은 동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개의 부모는 익명을 요구했으나 한 여학생의 엄마는 자신과 딸의 이름을 밝히고 학교 측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 신발을 신었다는 이유로 열한 살짜리 딸을 격리시키고는 할머니가 데리러 갈 때까지 물도 못 마시게 했다고 맹렬히 분개했다. 새 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고대했던 딸이 첫날 이런 일을 당한 후 학교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엄마는 딸을 이 학교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내려가다가 말미에 포함된 학교 측 입장을 읽어 보니, 학교 측이 아이들을 돌려보낸 이유는 비싼 신발을 신었기 때문이 아니라, 교칙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의 교칙에 따르면 학생들은 운동화가 아니라 구두를 신어야하는데, 구두는 걷기 편하게 발등을 덮어야 하며, 브랜드가 크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학교는 학기 시작 전에 대면으로 신입생들 및 그 부모를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 교칙에 맞는 복장을 해야 한다는 점과 어떤 모양의 옷과 신발이 교칙에 맞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설명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돌려보내진 아이들은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교칙을 무시한 복장을 하고 등교를 한 셈이었다. 제목이 주던 인상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렇다면 신문 기사에 등장한 저 부모들은 자녀들의 복장을 교칙에 맞지 않게 대충 갖춰 입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의 조치에 반대하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대다수라니, 역시 영국은 좀 더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해당 기사가 링크된 페이스북의 댓글창이 터져나가고 있어 열어보았더니 뜻밖에도 복장을 제대로 갖춰주지 않은 부모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예를 들어 ‘신발 때문에 애들이 배우는 게 달라지냐’는 댓글 아래에는 그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반면 규칙에 따르는 것을 학생시절부터 배우지 못하면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거나, 운동화를 신고 출근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거나, 저런 모양의 슬립 온 슈즈는 성장하고 있는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부적절하다거나, 교칙을 어겼으면 맞는 복장을 하고 가야하는 거지 혼났다고 학교를 옮기냐 언제까지 엄마가 저렇게 싸고돌아줄 수 있을 거 같으냐거나 하는 대댓글의 폭격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기사가 주는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신문기사만 가지고 실제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건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교 측의 엄격하다면 엄격한 조치에 대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후 어떻게 반응했을지, 저 분노한 엄마의 딸은 진짜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을지 등이 궁금하여 이후 소식을 찾아봤다. 신발에 관한 기사는 찾을 수 없었으나 해당 동네에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고 배수가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학교 시설의 상당 부분이 파손되어 학교는 개학한지 두 주 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야할 상황이고, 아이들이 언제 다시 등교할 수 있을지는 미정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한동안 학교에 신고 갈 신발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