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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전기는 문명의 혜택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1

한국의 도시는 밤에도 무척 밝습니다. 도시의 밤은 휘황찬란한 간판과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뒤섞여 아름다운 야경을 이룹니다. 우리는 전기가 풍족하니 에어컨도 잘 작동하고 각종 전자제품이 넘칩니다. 그러나 제가 취재 가는 나라들 중 제3세계 나라들은 이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전기가 부족해 항상 정전 사태가 납니다. 전기 들어오는 시간이 정해져있거나 그 시간마저도 너무 부족한 나라도 있습니다.

정전이 되어 사방이 암흑이 되면 저는 정말 서러워집니다. 그 옛날 못살던 시절에 우리나라도 그런 때가 있었을 겁니다. 밥 먹으려고 다 준비해놨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면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목욕하다 정전되면 황당합니다. 이렇게 정전이 되면 가져간 랜턴으로 불을 밝히거나 촛불이나 아주 작은 호롱불을 켭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작은 불빛도 눈이 적응하면 엄청 밝아 보입니다. ‘사람의 눈은 아무리 어두워도 약간의 빛만 있다면 다 보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정전이 되면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트북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철학자가 됩니다. ‘전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그동안 제가 전기로 받은 혜택들을 곱씹어 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다 문득 ‘이 작은 불빛으로도 사방이 다 보이는데 나는 한국에서 왜 밤을 낮처럼 밝히고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이야 치안 때문에 가로등이 밝다지만, 집 안에서는 밤을 낮처럼 밝히지 않아도 괜찮을듯해서 한국에 와서는 집 안 조명을 확 다 줄였습니다. 방 안에 아주 작은 등만 켜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전기를 아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밤에는 조금 어둡게 살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원자력 발전은 못 없애도 원전을 조금은 덜 돌아가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아낀 전기만큼 저보다 전기가 더 필요하신 분에게 돌아갈 수 도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또한 전기가 모자라는 나라에 사는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정전이 되는 세상이 더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24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인 듯합니다. 제3세계의 일반 가정에서는 호롱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화재 사건도 발생하고 화상 환자도 자주 생긴다고 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나라는 그만큼 불편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2

한 달 전 짐바브웨 취재를 다녀왔는데, 역시나 한창 문서 작업을 하는 와중에 정전이 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서 작업 중이었고 거의 다 끝내고 마지막 검토를 하는데 딱 정전이 된 겁니다. 1차로 화가 납니다. “이 나라는 아직도 정전이 되네.” 2차로 수습을 생각합니다. 정전이 되면 인터넷도 같이 끊깁니다. 일단 문서를 저장하고 전기가 들어오는 대로 보낼 준비를 합니다. 그 사이 밥이나 먹을까하며 호텔 프론트에 전화하니, 주방이 깜깜해서 음식을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정전인데 어쩌겠어” 하는 당당한 호텔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식사 계획을 바로 접었습니다. 그때부터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새벽이 되고 졸음이 와서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깜깜하면 인간은 원래 잠이 오나 봅니다. 그러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깨보니 아침 6시. 그제서야 전기가 들어왔는데,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통화 십여 통에 독촉 문자가 수두룩합니다. 얼른 한국에 연락을 하니 정전의 세계를 모르는 상대방께서는 왜 어제 저녁에 문서를 안 보내줬냐고 타박을 합니다. 정전이 되어서 방법이 없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전되면 인터넷도 끊긴다는 것을 겪어보지 못해 그러셨을 겁니다. 암튼 저는 많이 억울했습니다.

짐바브웨는 더운 나라입니다. 한낮에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니 목이 탑니다. 일하다가 얼음물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나라는 정전이 잘 되는 나라이니 냉장고가 작동하지 못하는 시간이 깁니다. 그래서 냉장고는 부잣집의 장식품 정도입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안에는 옷이나 책이 들어있습니다. 그 더위에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일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귀국해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카페로 달려갔습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얼음을 많이 달라고 했습니다. 얼음을 깨물어 먹으며 선진국의 향기를 느낍니다. 얼음을 더 달라고 해도 듬뿍 줍니다. 아무 때나 얼음을 먹을 수 있는 대한민국은 선진국입니다. 저에게 얼음이란 전기가 많은 나라의 부의 상징이자 문명의 혜택이 되었습니다. 새가슴 김피디는 냉장고의 얼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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