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 이슈 톡톡
정신질환과 범죄보도
- 글
지난 7월, 신림동 일대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행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이른바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 지난 8월 서현역에서도 20대 남성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강력 범죄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언론은 연일 범죄보도로 떠들썩한데요.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보도 내용 중에는 흉기 난동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피의자가 정신적인 고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거나 정신질환 병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흉기 난동 사건과 같은 강력 범죄를 비롯해 각종 범죄 관련 보도에서 정신질환을 사건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되는데요. 언론이 범죄 원인을 피의자 개인의 정신질환 때문인 것으로 그 범위를 한정하게 되면 범죄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환경적 요인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 전체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까지 야기해 피해를 줄 우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PAC 이슈 톡톡>에서는 언론의 범죄보도에 있어 피의자가 가진 정신질환이라는 특성과 관련해 유의해야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지를 기존 연구결과와 가이드라인,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 및 다양한 관련 논의 내용 등을 통해 살펴보고 바람직한 정신질환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정신질환을 범죄 원인으로 단정하는 보도는 지양해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020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 관련 보도 중 상당수가 부정적인 논조의 기사였으며,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 사례가 강조된 보도로 인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2021년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응답한 비율이 90%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정신질환 관련 보도 중 사건·사고를 다룬 기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하니, 범죄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과 흉악범죄를 연관 지은 수많은 기사는 결국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확산에 일조한다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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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정신과적 진단을 범죄의 원인으로 단정하거나 암시하는 추측성 보도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우려 속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는 보도를 예방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개인적인 권익을 침해하고 편견을 유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언론은 정신질환자에 관한 보도에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해당 심의기준을 위반해 조현병 환자인 범죄 피의자의 주소, 주택전경, 성(姓), 나이를 공개한 보도에 대해 시정권고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서울시정신건강사업지원단은 유관 단체와 협업하여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을 마련하기도 했는데요. 이밖에도 국가계획 수립 시 정신질환보도에 대한 권고기준 수립 및 이행확보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 노력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묻지마 범죄’는 존재할까?
각종 사건·사고 보도를 살펴보면, 유독 ‘정신질환’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보도에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묻지마 범죄’인데요. 우리 언론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범죄를 두고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부르곤 합니다. 지난 8월 발생한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피의자가 과거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라고 암시하는 듯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심코 사용하는 이러한 용어가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거나 범행 동기 추적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데요.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가에 관한 논의는 2016년 발생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해당 사건을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판단했지만, 가해자가 여성만을 표적으로 삼았고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까지 한 만큼 아무런 이유나 동기가 없는 범죄라는 의미를 내포한 단순 ‘묻지마 범죄’로 치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죠.
이와 관련해 최근 정부와 여당은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에서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가 범죄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어 앞으로 ‘이상동기 범죄’ 등 대체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보다 앞서 지난해 경찰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로 명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유 없는 범죄는 없고,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범행 동기가 불확실한 무차별적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그 원인을 개인의 정신질환에서 찾는다면, 사건은 단순해집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한 개인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저지른 범죄이니, 제도의 미비나 사회적 문제 때문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범죄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마치 범죄의 원인이 전적으로 해당 개인의 정신질환에 있는 것처럼 보도한다면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을 위험이 있는데요. 이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축시키고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가 흉악범죄로 얼룩져 혼란스러운 요즘,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범죄예방이라는 범죄보도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금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