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무당과 피디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저는 전쟁 지역을 취재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상황들을 한국에 와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면 마치 그동안 겪었던 일들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저를 바꿔야 합니다. 어쩌다 무용담 정도 꺼낼 수 있을 법도한데, 저는 그러질 못합니다. 겁이 많아서입니다. 그 지역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의 기억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니까요. 그 공포와 기억들은 저에게 전쟁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제 직업 때문에 인터뷰라도 하게 되면, 기자들의 질문에 생살 뜯기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질문 속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과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고스란히 꿈에 등장합니다. 어쩌면 제가 진작 겪어야 했을 아픔인데 무의식중에 방어기제가 작동해 마음속에 담아와서는 계기가 생기니 마구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처들을 다 극복할 자신은 없습니다. 평생 안고 가야 합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취재하는 데 몰두하며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이겨낼 뿐입니다.
2013년 8월, 저는 이집트 카이로 라바광장에서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무슬림형제단이 정부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이집트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한 이집트 장교가 무전기를 들고 저에게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저 시위대 앞에 있는 사람들은 곧 유령이 된다”라고 말하며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귀에서 삐~하는 이명이 들리며 다리에 힘이 탁 풀렸습니다. 그 장교는 저에게 인근 건물로 올라가있으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발이 안 떨어지는 저를 현지인 스태프가 업고 건물로 올라갔고, 동시에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피가 튀는 살육의 현장을 보며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날 현장에서만 215명(민간인 208명, 군경 7명)이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고는 충격으로 기절했고,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꿈속에서도 되풀이되는 그 상황을 자꾸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 시위대의 눈을 마주합니다. 유령이 되었다는 그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아주 드물게 이런 꿈을 꾸지만, 당시에는 매일 밤 반복해서 그 꿈을 마주해야했기에 잠들지 않으려고 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는 도저히 한국에서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면 이러다 미쳐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만 도착하면 저는 그런 경험을 한 적 없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아프리카 기니라는 나라로 취재를 갔을 때 어느 무당을 만났습니다. 토테미즘을 믿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무당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취재를 가면 무당이 와서 덕담도 해주고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 무당이라는 존재가 그리 대단해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방식을 따라가야 취재에도 도움이 되고 현지화 되어야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으니 되도록 그들 삶의 방식을 존중합니다. 그때 그 기니의 무당은 저를 보고 한참을 현지말로 중얼거리더니 제 등 뒤에 수많은 영혼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많은 귀신을 몰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답니다. 수많은 주검을 보았던 저는 그 말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당은 저에게서 그 영혼들을 떼어내주고 싶다고 합니다. 저보고 굿을 하면 자기가 나쁜 영혼만 골라 쫒아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현대교육을 받은 저는 이 말이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굿을 했습니다. 우리 돈 3만 원 정도 주고 굿을 하고 나니 무당이 저에게 여전히 제 뒤에 영혼들이 많이 있다고 하네요. 아니, 돈 주고 굿도 했는데 왜 그러냐고 항의하니 제가 그 영혼들을 안 보내준다네요. 무당의 말솜씨가 대단합니다. 그러면서 무당이 저에게 “이 영혼들이 당신을 지켜줄 것이니, 당신이 보내주고 싶을 때 보내 주라”고 합니다. 역시 무당은 미신이 틀림없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 저는 현대의학을 더 믿으므로 그 영혼들이 가시든 안 가시든 그저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 취재진으로 최선만 다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