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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낯설게 하는 장면들

결핍에 햇볕이 내리쬘 때
- 영화 <내 사랑>

  • 이성봉 (아웃스탠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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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필자 제공

비가 참 많이 내리는 여름입니다. 이런 날씨에 잔잔한 음악까지 더하면 마음도 촉촉하게 젖습니다. 이런 날에는 더 감성에 젖기 위해 ‘비가 오면 생각나는 노래’, ‘비 올 때 보기 좋은 영화’ 등을 찾아보기도 하는데요. 반대로 햇빛이 그리워 햇빛이 쨍쨍한 콘텐츠를 보면서 부족한 감성 비타민을 채우곤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옛 생각에 잠기곤 하는데요.

10년 전 아일랜드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18개월 정도 지냈는데요. 그 시절, 자주 생각한 건 ‘햇볕이 소중하구나’였습니다. 평소 볕이 내리쬐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가 안 오는 날보다 오는 날이 더 많습니다. 어쩌다 비와 구름 없는 날이면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곤 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늘이 내려준 볕을 만끽하기 위해서입니다.

볕이 내리쬐는 날은 특별한 날입니다. 온종일 비가 오다가 오후에 잠깐 해가 빼꼼 고개를 드는 날에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고 나서, 더블린을 생각하면 오히려 축축하고 우울한 기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볕이 그리 소중한지 모르고 살기 때문이겠죠. 이런 생각에 잠길 때 생각나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에이슬링 월쉬’ 감독이 연출한 <내 사랑(원제 Maudie)>입니다.

감독은 아일랜드의 날씨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정서를 시나리오 바탕에 깔았습니다. 영화는 캐나다 국민화가 ‘모드’의 삶과 사랑, 그림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캐나다 배경에 아일랜드 감성이 흐르는 묘한 영화입니다. 아일랜드 영화는 슬픔도 기쁨도 과하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내 사랑> 역시 장애와 가난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 모드에게 남편 ‘에버렛’이 얼마나 소중한 볕이었는지 담담하게 그리는데요. 쏟아지는 빗속에도 인물에게 소소한 볕이 내리쬐는 순간을 포착한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는 1930년대 캐나다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시작됩니다. ‘모드(샐리 호킨스)’는 선천적 관절염으로 걷는 게 불편한 사람이에요. 친오빠로부터 버림받아 이모집에 얹혀살지만 구박받기 일쑤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지만 친척들의 감시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마음만은 늘 자유로운 영혼인 모드는 독립을 꿈꾸는데요. 어느 날, 가정부를 구하는 생선장수 ‘에버렛 루이스(에단 호크)’를 알게 되고요. 에버렛 집의 가정부가 되면서 두 사람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관계가 깊어지는 건 흔히 관찰하기, 공통점 찾기, 결핍 채워주기, 서로를 지켜주기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요. 모드와 에버렛이 가까워지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평범하지 않다는 겁니다. 모드는 신체적 장애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친척들은 늘 그녀를 집안의 짐으로 취급했죠.

에버렛은 부모 없이 자랐고요. 글자도 못 읽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어려워하죠. 성격이 괴팍하다고 손가락질 받기도 합니다. 또한, 오로지 육체노동만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단번에 서로에게 빠진 건 아닌데요. 오히려 초반엔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모드는 가정부 일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그래서 에버렛 집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렇다고 에버렛은 잘 알려주지도 못합니다. 타인과 소통할 줄 몰라 “알아서 해”라는 말만 반복하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하기까지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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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에버렛은 모드의 뺨을 때리기까지 합니다. 이미 에버렛이 모드를 가정부로 고용했을 때부터 주변 이웃들은 에버렛이 장애인 가정부를 집안에 들였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모드가 가정부 일을 하면서 ‘성노예’가 됐다고 손가락질했죠. 그러던 이들의 관계는 ‘관찰하기’에서 달라지는데요. 모드는 에버렛에게 뺨을 맞은 날부터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집을 떠날지, 계속 머무를지 그에게 결정하라고 말하죠.

에버렛은 세상에 문을 닫아버린 사람이었는데요. 누군가와 살갑게 대화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조차 서툴죠.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예술성을 표현하는 모드를 보고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한낱 가정부라고 생각했던 모드가 인격체, 그리고 여성으로 관찰되는 순간이었죠. 에버렛은 그날 이후 모드의 그림을 관찰합니다. 동시에 그녀의 결핍을 느끼죠.

어느 날, 걷기 힘들어하는 모드를 손수레에 태워 들판을 달립니다. 이날 이후 평생 제대로 달려본 적 없는 모드는 에버렛과 함께하는 순간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모드의 결핍이 에버렛의 관찰 이후 채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모드는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에버렛의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립니다. 단순히 대화를 거는 것이 아니고요.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법을 알려줍니다. 성관계하려는 에버렛에게 “결혼하지 않는다면 몸을 섞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타인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법을 하나씩 가르치죠.

이러한 장면에서 모드의 성격이 드러나는데요. 모드는 단 한 번도 환경에 굴복해 의지가 굽혀진 적이 없습니다. 평생 관절염으로 걷기 힘들었지만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자신을 버린 오빠와 비인격적 대우를 하는 이모 밑에서 자랐지만 기죽은 적이 없습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멈추지 않고 그렸습니다. 강한 의지와 정신력을 가진 여성이라는 게 에버렛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 겁니다.

무지했던 에버렛은 모드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모두가 에버렛의 괴팍한 성격을 욕했는데요.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가르침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를 알려준 모드 덕분에 부족함이 채워지기 시작하죠. 소통할 줄 모르는 에버렛에게 모드는 평생 소통할 수 있는 아내가 되어주었고요. 에버렛은 모드의 다리가 되어주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줍니다. 몸이 약하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여자와 정서적 결핍이 있지만 신체 건강한 남자가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는 셈이죠.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가 된 겁니다.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

모드의 그림은 결핍이 채워지면서 세상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요. 모드의 그림이 알려지며 두 사람은 유명해졌습니다. 언론 인터뷰까지 하죠. 모드가 에버렛의 ‘몸종’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에버렛이 뛰어난 예술가 아내 덕을 보고 있다고 추켜세웁니다. 이때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음악으로 가득 찬 거실에서 모드는 에버렛의 발등 위에 올라가 춤을 춥니다. 그 예술가의 뛰어난 작품 뒤에는 발이 되어주는 한 남자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죠.

영화를 보면 모드와 에버렛이 거니는 공간이 모두 그림처럼 느껴지는데요. 모드에게 그림은 자기감정의 단면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영화 전체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비추는 볕을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전체가 다소 우울하고 축축해 보일 수 있는데요. 두 사람의 감정은 먹구름을 뚫어내는 빛을 보여줍니다. 마치 제가 매일 비가 오는 아일랜드에서 맑은 날을 만났을 때 느낀 것과 비슷했습니다. 이 영화가 비 오는 날 떠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은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일이 많은 곳인데요. 이들의 표정과 이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보면 그 집에만 온기가 있어 보입니다. 결핍투성이인 모드와 에버렛이 서로에게 볕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죠. 모드의 임종 때가 되어서야 에버렛은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는데요. 결핍이 채워진 뒤, 서로가 얼마나 완벽해졌는지 느끼며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라고 자문합니다. 이때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모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난 사랑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