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본문 하단

Newmedia of the world

빅테크의 저널리즘 보조금 정책과 언론의 딜레마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Newmedia of the World 1

지난 5월 4일, 오픈AI를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앤트로픽 등 AI 기업의 수장들이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과 백악관에서 마주 앉았다 1). 여러 얘기들이 오갔지만 핵심은 AI의 안전한 사용과 규제 문제였다. AI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음을 전달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회의에 잠시 들렀던 바이든 미 대통령도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엄청난 잠재력과 엄청난 위험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참석했던 그 누구도 이날 논의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정부가 강력한 규제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이들 수장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챗GPT를 개발한 기업인 오픈AI가 특히 그랬다. 백악관 회의 며칠 뒤 미 의회 청문회에 불려간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는 “AI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술비판론자인 개리 마커스의 ‘국제적인 AI 규제기구’ 설립2)에도 대체로 동의한다고 했다3). 몇몇 언론들은 그의 전향적인 태도에 찬사를 보내기까지 했다.

5월 25일에는 ‘AI에 대한 민주주의의 투영’4)이라는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총 100만 달러(한화 13억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AI가 따라야할 규칙을 결정하는 민주적 프로세스,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지원한다는 명분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이 정부의 AI 규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심의와 광범위한 대중의 의견을 디딤돌로 삼아 민주주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프로세스를 장려하고자 합니다.”

오픈AI는 규제와 보조금의 오묘한 역학 관계를 정석으로 학습한 듯했다. 통상 규제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대규모 보조금 계획을 발표하면 규제 논의는 다소 부드러워지곤 했다. 글로벌 규제의 큰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그렇게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저널리즘은 이러한 보조금 프로그램의 반복된 희생양이었다.

최근 오픈AI를 괴롭히는 핵심 주체는 뉴스 미디어들이다. 챗GPT가 다수 언론사들의 뉴스와 콘텐츠를 동의 받지 않고 학습했기에 그렇다. 여러 언론 관련 협회 등이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또는 준비 중이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걸쳐 있을 정도로 갈등의 외연도 점차 확장하는 국면이다.

Newmedia of the World 2

오픈AI는 선배 빅테크들처럼 영리하게 보조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우선 아메리카저널리즘프로젝트(AJP)에 5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AJP는 보조금을 지급받는 대가로 생성 AI 활용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허위정보 확산을 방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에 대한 피드백을 오픈AI 측에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10개의 비영리 언론사들을 선정해 생성 AI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여기에 더해 오픈AIGPT AP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디트 500만 달러도 약속했다. GPT 시리즈를 써야만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다. 결과적으로 AJP는 오픈AI가 개발한 챗GPT의 확산을 도우면서 이로 인한 위험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모범사례를 만들어줘야만 한다. 그것이 보조금의 반대급부다.

오픈AI는 언론사의 뉴스를 합법적으로 구매하는 전략도 본격화했다. 오픈AI는 1985년 이후 생산한 AP통신의 모든 뉴스 콘텐츠에 대한 접근권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5). 정확한 금액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저작권 분쟁을 빚고 있는 와중에 맺은 첫 번째 계약이기에 의미가 깊다.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도 있다. 앞선 AJP의 보조금 제공 사례처럼 AP통신은 오픈AI에 품질 높은 피드백을 제공해야만 한다. 생성된 결과물의 정확성은 어느 정도인지, 만족도는 어떠한지, 뉴스 생산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는지 등 다양한 반응들을 오픈AI에 넘겨줘야 한다. 고품질의 뉴스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학습시킬 수 있는 데다, 양질의 피드백까지 얻을 수 있게 됐으니 오픈AI로선 나쁘지 않은 거래다. GPT 시리즈는 그만큼 더 질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에 뒤질세라 구글도 언론사를 향해 구애의 손길을 뻗고 있다. 구글은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제네시스(Genensis)’라는 이름의 뉴스 전용 생성 AI를 사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구글은 “우리가 직접 개발한 제네시스는 저널리즘의 대체자가 아닌 보조자”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어느 정도 검증이 되면 소규모 언론사들과 협업해 기자들을 도울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에 보조금이 빠질 리 만무하다.

빅테크 기업들은 그들을 향한 규제의 칼날이 서슬 퍼럴 때마다 보조금 정책을 발표해왔다6). 자사 기술의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위해 상당한 자금도 지원했다. 수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언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곧 활용 가치가 떨어지면 추가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보조금에 의존했던 언론사들은 갑작스런 그들의 변심에 휘청거려야 했다. 그것이 빅테크 보조금 역사가 준 교훈이다. 메타가 그랬고, 구글이 그랬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의 매튜 인그램 기자는 “이러한 기업들이 제공하는 모든 지원은 궁극적으로 언론사를 문 닫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AI 생태계에 대한 언론의 효용이 소진되면 자금 지원의 물꼬가 금방 막힐 위험도 남아 있다”고 썼다7). 냉혹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를 지원하기 위한 빅테크들의 관심과 선의를 나무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보조금은 늘 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을 앗아간 역사 위에서 작동해왔다. 광고 시장의 점유율 변화가 이를 증명한다. 또다시 언론사들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 더 좋은 피드백을 그들에게 제공할수록 더 많은 기자의 생존조건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최선의 해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기사 ·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