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BBC 톱스타와 성추문 스캔들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지난 7월 8일, 영국의 대중지 <더 선(The Sun)>은 “BBC의 톱스타”가 십대에게 돈을 주고 성적인 사진을 받았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는 영국의 공영방송이다.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신력이 높기로 유명한 매체로,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높다. 이런 BBC에서, 그것도 유명한 진행자가 청소년에게서 선정적인 사진들을 받고 그 대가로 삼만 오천 파운드(약 육천만 원 정도다)가 넘는 돈을 주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해당 청소년의 가족은 이 돈이 마약을 사는데 쓰였다며, 그 BBC 진행자가 돈을 주지 않았다면 자녀가 마약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소년의 가족은 BBC에 먼저 접촉했지만 BBC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후 가족의 제보를 받은 <더 선>이 BBC에 연락하자 BBC는 그제야 문제의 진행자를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더 선>의 기사에서는 문제의 BBC 진행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과연 누가 스캔들의 주인공인지에 대한 추측과 의혹이 이어졌다. BBC 진행자들은 자기는 그 보도의 주인공이 아니라거나, 자기는 내일도 방송에 나올 거라고 하는 등의 트윗을 하며 본인들의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성적인 내용의 사진 촬영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에 대해 적법한 동의를 할 수 있는 나이는 18세다. 즉,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적인 이미지를 촬영하거나 그러한 사진을 배포 또는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다. 따라서, BBC의 진행자가 해당 청소년이 17세일 때 선정적인 사진을 제공받았다면, 그는 아동보호법에 의하여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진행자가 청소년이 17세일 때부터 사진을 받았다고 보도한 <더 선>의 최초 기사는, 이 사건이 범죄 행위가 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했다고 할 수 있다.
7월 12일, BBC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비키 플린드(Vicky Flind)’는 성명을 내고, 문제의 진행자가 본인의 남편인 ‘휴 에드워즈’라고 밝혔다. 61세의 휴 에드워즈는 BBC의 간판프로그램인 ’10시의 BBC’ 진행을 맡고 있었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부터 찰스 3세의 즉위식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행사의 단골 사회자로 활약해왔다. BBC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진행자이기도 하다. 플린드와의 사이에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 플린드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최근 몇 년간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증상이 심해져 입원 중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경찰은 이 사건에 있어서 범죄적인 요소에 관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즉,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경찰의 발표에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게다가 기사가 난 날 해당 청소년이 <더 선>의 리포터에게 연락을 해서는 기사 내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음에도 <더 선>이 이와 같은 사실을 후속 보도로 내보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제는 20살이 된 청소년의 변호사는 BBC에 편지를 보내, 청소년 부모의 주장은 ‘쓰레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청소년의 부모는 ‘이 사건에 있어서 비싼 변호사 비용을 대주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했다. <더 선>의 주장도 슬그머니 바뀌었다. <더 선>은 BBC 진행자가 청소년이 17세일 때부터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고 적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에드워즈가 사진을 받은 것이 상대방이 17살일 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 되는 셈이다.
이 사건이 범죄가 아닌 이상 <더 선>의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런 사실들은 에드워즈의 사생활이며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만 문제가 될 뿐 보도를 해서는 안 되었다는 주장이다. 에드워즈가 ‘매우 친절하고 의지할 수 있으며 가장 영감을 주는 동료로서 같이 일하기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측근도 등장했다. 심지어 <더 선>의 보도가 BBC를 망치기 위한 공격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더 선>의 보도 이후 에드워즈가 미성년자 및 동료에게 부적절한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 역시 밝혀졌고, 에드워즈가 본인의 이름을 언급하겠다고 한 미성년자 한 명을 협박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BBC 차원에서 신속한 제재를 하지 않은 점, 피해자들이 선뜻 그를 비난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증거를 제공하지도 못한 점, 오히려 <더 선>의 보도를 비난하는 모습 등은 그가 영향력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졌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의 행동이 불법적이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BBC가 이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여기서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점 두 가지 : 1. <더 선> 뿐 아니라 다른 신문들도 이 청소년의 신원은 물론 성별조차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기사들은 이 청소년을 일컬을 때, 남성 대명사인 ‘그(he)’나 여성 대명사인 ‘그녀(she)’를 사용하지 않고, ‘그들(they)’을 사용하고 있다. 이 표현방식이 ‘스스로의 성별을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방식으로 굳어져 가는 듯하지만, 처음 읽을 때는 좀 헷갈린다.
2. 한 트위터 유저는 또 다른 BBC 진행자인 ‘제레미 바인’이 사건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진행자가 에드워즈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 사람은 손해배상을 하는 대신 운동신경질환 관련 단체에 1000파운드의 자선금을 내기로 바인과 합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