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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視線)

만델라 효과

  • 권희경(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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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미국에서 이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죽었다”고 답한다고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하다가 국가 반역죄로 투옥된 지 27년 만인 1990년 석방되었고, 1993년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어, 이듬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향년 95세의 나이로 집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가 옥사했다고 생각할까요?

1980년 당시 감옥에 있던 만델라가 아프다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었는데, 결핵을 앓고 있던 만델라가 "아마 (먼저 수감되었던 사람들처럼) 감옥에서 죽을 것 같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언론은 "혹자는 만델라가 옥사할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 시점에서 만델라가 얼마나 아픈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설득력 없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 당시 만델라와 함께 저항하던 인권 운동가들의 장례식이 자주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넬슨 만델라를 기억해야 할 때"와 같이 오해하기 쉬운 제목을 단 기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만델라가 살아있던 시기에 흉상을 세우는 등, 다양한 기념행사도 열렸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혼합되어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죽었다고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는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기억을 공유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개인이 근거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공화증(空話症)’ 또는 ‘작화(作話)’라고 하는데, 만델라 효과는 개인의 병리적 상태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소통의 단절과 정보 왜곡 등으로 널리 퍼지게 된 사회적 착각을 가리킵니다. 이는 넬슨 만델라가 살아있던 2000년대, 많은 미국인들이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던 1980년대에 감옥에서 죽었다고 기억하는 현상에서 유래했습니다. 2009년경 넬슨 만델라의 투병 소식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는 1980년대에 이미 사망했던 게 아니었냐고 의아해하면서 이 현상이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만델라 효과’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는 2012년 <The Wood Between Worlds>라는 블로그에 “Berenstein Bears: We Are Living in Our Own Parallel Universe”라는 글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Berenstain Bears’는 미국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자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이름인데, 이를 읽고 자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 이 책의 제목을 ‘Berenstein Bears’라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Berenstain’을 ‘Berenstein’으로 기억한 것이지요. 철자법상 Einstein, Bernstein 등 ‘-stein’이 훨씬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리즈를 이용한 상품에서조차도 ‘a’와 ‘e’가 혼용된다고 합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만델라 효과’가 평행우주가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그 때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넬슨 만델라가 그 세계에서는 옥사했고, 지금 세계에서는 자연사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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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넬슨 만델라와 관련해서는 이런 잘못된 집단 기억 현상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이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만델라라는 인물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만델라가 1980년대에 감옥에서 옥사했다는 오해를 하려야 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만델라 효과’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 마지막 장면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했던 T-800이 용광로로 들어가면서 “I'll be back”을 외쳤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T-800이 용광로에 들어간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 스카이넷을 탄생하지 않게 하려는 자기희생이기 때문에 영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라면 저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I'll be back”은 마지막 용광로 장면이 아니라 영화 중간 쯤 사이버다인 전투 장면에서 나옵니다. 실제 마지막 대사는 “Good bye”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I’ll be back”을 영화의 마지막 대사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I'll be back”이라고 말하면서 용광로로 내려가는 장면을 따라한 것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않았던 다른 나라에서는 이 대사에 대한 ‘만델라 효과’가 없다고 하니, 한 시기에 공유한 경험이 집단적 기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나 봅니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은 상황에 따라 편집되어 얼토당토않은 기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 듀크대를 비롯한 연구진은 참여자들이 실제를 잘못 기억하도록 하는 실험을 고안함으로써 이를 증명했습니다. 연구진은 24명의 연구 참여자들에게 70개의 짧고 독특한 비디오 클립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음날 연구 참여자들은 MRI 검사관 속으로 들어가 다시 비디오를 봤습니다. 그런데 참여자 절반에게는,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순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비디오 방영을 중지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참여자들이 가능한 한 많은 비디오 내용을 회상해 내도록 자세하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중단 없이 비디오를 본 참여자들은 그 내용을 대체로 정확하게 회상한 반면, 비디오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던 참여자들은 그 내용을 제멋대로 기억하거나 창작 수준으로 다르게 회상하였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비디오가 중단된 참여자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나름대로 예측하고 있던 중에 오류가 일어나 그 사건에 대해 더 강력한 인상을 받으면서, 중단 이전의 내용을 주관적으로 기억했다고 합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중단 없이 비디오를 본 참가자들의 해마는 기억을 강화하는 ‘보존 모드(preserving mode)’에 있었고, 중간에 중단돼 놀라움을 일으킨 영상을 본 사람들의 해마는 ‘업데이팅 모드(updating mode)’로 전환돼 기억을 편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이 갑자기 중지된 집단에서는 기억을 생성, 검색 및 편집하는 데 중요한 뇌 영역인 해마의 활동 패턴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패턴 파괴가 많을수록 잘못된 기억이 더 많이 발생하게 돼, 참여자들은 갑작스러운 중단으로 놀라움을 일으킨 비디오에 대해 잘못된 기억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죠. 놀라움은, 그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인상은 강력하게 남기지만, 사실 관계는 왜곡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시키는 대로 거짓된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부정확한 기억(misremember)’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언론보도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녹음, 녹화, 녹취 등의 객관적인 기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언론조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료들조차도 때로는 실체를 100%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조정은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과 판단보다는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