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라마단 견문록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이슬람 종교에는 일 년에 한 번 ‘라마단’이라는 금식월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 달간 먹는 걸 금하는 달입니다. 그렇다고 한 달간 밥을 전혀 먹지 않고 무작정 굶는 것은 아닙니다. 라마단 중 이슬람 신자들은 해가 뜨기 시작할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않지만 해가 지면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라마단 기간 중 낮에만 음식을 안 먹는 것입니다. 음식만 안 먹느냐? 아닙니다. 물도 안 마시고 이도 닦지 않습니다. 어떤 신실한 신자는 침도 안 삼키고 휴지에 뱉고 다닙니다.
라마단 기간에 사람들은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사람이 밥을 굶으면 예민해지나 봅니다. 취재 중 관공서를 가도 다들 책상에 엎드려있습니다. 뭘 물어봐도 쳐다보지도 않고 “몰라”, “가”라고만 합니다. 취재협조는 하나도 안 됩니다. 이슬람권 국가들 중에는 외국 취재진에게 상당히 까다롭게 구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하려면 참 많은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취재기간이 라마단에 걸리면 취재허가를 내주는 관리들이 저러고 다 맥없이 쓰러져있습니다. 신경질과 예민이 하늘을 찌릅니다. 취재허가, 안 나옵니다. 라마단 중에는 오후 2시만 되어도 다들 퇴근하는 분위기입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찾아가봐야 아무도 없습니다. 휑한 사무실을 방문하여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망연자실한 새가슴 피디가 상상이 가실까요?
심지어는 비행기 뜨는 시간도 기장 마음대로입니다. 목적지 해 지는 시간에 맞춰 일찍 뜨거나, 아예 먹고 출발하려고 늦게 뜹니다. 경찰은 힘이 없어 늘어지고, 학교도 그 기간엔 모든 시험을 피합니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가게문도 안 열고 식당은 아예 영업을 안 합니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에 취재가 걸리면 정말 죽음의 코스입니다.
이처럼 라마단은 취재 중인 저에게는 정말 괴롭습니다. 처음엔 저도 현지인들과 같이 안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와...하루 종일 어지럽고 허기집니다. 눈앞에 별이 보입니다. 몸이 도저히 카메라 들고 다닐 만큼 안 따라 줍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취재 중간에 잠깐이라도 제가 묵는 호텔방에 들어와 몰래 음식을 먹었습니다. 주로 과일이나 빵을 아주 스피디하게 먹었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저야 이슬람 신자도 아니고 취재 동력도 달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일하는 현지 스태프들에게는 비밀로 했습니다. 제가 외국인인 것은 그들도 다 알지만, 자기들은 못 먹는데 ‘쟤’는 배불리 먹는다면 기분이 나쁠 것 같아서입니다.
하루는 호텔에서 후딱 대충 때우고 양치질까지 초스피드로 하고 로비로 내려갔는데 저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수군댑니다. ‘쟤 뭐 먹은 거 아냐?’라며 의심합니다.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먹는 것 가지고 참 치사해집니다. 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합니다. 그러다 그들이 대놓고 물어봅니다. “너 뭐 먹었지?” 라고요. 그래서 저는 “내가 무슬림(이슬람 신도)이냐? 나는 다른 종교잖아? 우리 종교는 라마단 없어” 이렇게 맞받아쳤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순간 형광등 켜진듯 한 얼굴로 “아...쟤는 무슬림이 아니지”하고 알면서 모른 척 슬쩍 넘어갑니다.
금식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해주고 그 시간동안 배고픈 자들의 고통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런 좋은 점을 신신당부합니다. 옳습니다. 하지만 라마단 기간에 꼭 사고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신앙심이 엄청 세집니다. 그들 마음속에 신앙심이 폭발하는지, 각종 폭탄 사고도 많아집니다. 자연 취재거리도 덩달아 많아집니다. 배는 고프고 날은 덥고 일은 많아지고. 라마단은 정말 힘듭니다.
라마단 중엔 금식을 하니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겠다 싶었는데, 아니더라구요. 해가 지면 비로소 아침밥(이프타르)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때 먹는 밥은 평소 먹는 양의 두 배는 됩니다. 사람들은 마치 낮에 못 먹은 원한을 풀 듯 마구 먹어댑니다. 그러고 밤에 잠이 드니 오히려 라마단에 몸무게가 더 늘게 된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아가씨들(요새 K-POP 유행으로 중동 아가씨들도 다이어트에 무척 신경씁니다)은 라마단을 절호의 다이어트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특히 이 기간에는 TV 시청률이 엄청납니다. 예능과 드라마, 퀴즈쇼 등 라마단 특집이 크게 흥행합니다. 더불어 한국 드라마도 인기 폭발입니다. 요즘은 그곳 사람들이 저보다 한국 드라마, 한국 배우들을 더 많이 압니다. 라마단이 지나 사람들을 만나면 “너 누구 아느냐”, “그 드라마 봤느냐”며 연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라마단 기간 동안 다들 드라마 정주행을 하셨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취재를 하던 시기의 라마단은 늦가을이었는데, 지금은 점점 빨라져 라마단이 초봄으로 이동했습니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조금씩 앞당겨집니다. 한동안은 여름 한 중간에 라마단이 들어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라마단을 보냈습니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배고프면 보이는게 없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눔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라마단의 금식은 그런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종교와 신은 그런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그러나 저는 굶어가며 취재 못 합니다. 요즘에도 새가슴 피디는 라마단에는 이슬람 국가로 취재 가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