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영국의 교복과 학생들의 시위할 권리
- 글 김세정(SSW 프래그마틱스 솔루션스 변호사)
영국의 경우 만 5세부터 11세까지를 초등(primary)교육, 이후 11세부터 16세까지를 중등(Secondary)교육이라고 부른다. 중등교육까지가 영국의 의무교육에 해당한다. 영국 학교들은 대개 교복을 채택하고 있는데, 다른 서유럽 나라들이나 미국과는 다른 점이다. 교복 스타일은 학교마다 달라서, 자켓에 넥타이를 매는 경우도 있고 깃 있는 티셔츠에 면바지나 치마를 입도록 하는 곳들도 있다. 옷, 가방이나 양말 등 모든 아이템에 학교의 표식을 새기고 지정된 가게에서 구입해 착용하도록 할 정도로 까다로운 학교도 있고, 색깔 정도만 정해놓고 아무 데나 가서 사 입으라고 하는 학교도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경우 79%가 교복을 입는다고 하고, 중등학교의 경우 그 비율은 98%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거의 모든 학교가 교복을 입게 해서 그런지 교복과 관련한 학생들의 개별적 또는 집단적 시위가 영국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영국에서는 시위를 유럽인권조약에 의하여 허용되는 권리라고 본다. 폭력을 동반하지 않으며 손해를 끼치지 않는 평화적인 시위가 적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학생들 역시 원칙적으로 시위를 할 수 있다.
한여름에도 기온이 그다지 높지 않고 건조한 영국이지만 유달리 여름이 무더운 해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학교에서 반바지를 입을 수 없게 하는 데 불만을 품은 남학생들이 치마를 입고 등교를 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매우 더운 여름을 각오해야 한다는 올해도 벌써 웨스트 미들랜드 지방의 한 학교에서는 13세의 남학생이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초·중등 과정이 같이 있는 학교인데, 초등 과정의 남학생들에게만 반바지를 허용한다. ‘올리버’라는 이름의 이 남학생은 이와 같은 학교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친구의 치마를 빌려 입고 등교했다. 그러자 교장은 올리버를 불러다가 이런 시위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뒤 공식 교복 치마를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복장에 대한 규칙을 개정하여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에게도 맞춤형 반바지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여학생들의 치마가 문제되는 사례들도 드물지 않다. 교복 치마의 길이는 무릎 정도에 닿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무릎 길이의 교복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은 거의 없다. 치마를 아예 수선해 줄이거나, 허리를 접어 짧은 치마로 만들어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영국 북서쪽의 머시사이드에 있는 한 중등학교는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 검사를 했다가 강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여학생들의 주장에 따르면 학교 측이 여학생들만 따로 모아 줄을 세운 다음 남자 교사로 하여금 치마 길이를 검사하도록 하여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서 시위에 나섰는데, 남학생들 역시 이들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교복 바지 위에 치마를 입고 동참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상당수 여학생들의 치맛단이 “무릎 위치에서 현저히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치마 길이 검사는 교복에 관한 교칙을 이행한 것일 뿐이며, 남자 교사와 여자 교사가 함께 검사를 진행했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면서 시위에 참석한 몇몇 학생들을 징계했다.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가 짧은 것이 너무나 싫은 나머지 이를 문제 삼아 아예 남녀 학생 모두에게 바지 교복을 입히려다가 학생들의 반발로 계획을 중단한 학교도 있다. 옥스포드셔의 한 중등학교는 지나치게 짧은 교복 치마가 부적절한 사회적 메시지를 준다는 이유로 ‘중성적인’ 교복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결국 치마 교복을 없애겠다는 이야기였다. 경찰까지 출동한 대규모 시위 끝에 이 학교는 교복 정책과 관련하여 학생 및 학부모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은 점을 사과하고 앞으로 교복뿐 아니라 다른 정책도 상의를 거쳐 정하겠노라고 밝혔다.
이와 반대로 여학생들이 바지 교복을 허용해 달라며 시위를 한 사례도 있고, 학교 교복이 특정 종교에 대해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시위를 한 사례도 있으니 이쯤 되면 교복을 없애는 건 어떠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그렇게 되지는 않은 듯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교복을 착용하는 경우 학교에서 학생들 간 ‘괴롭힘(bullying)’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믿는다고 한다. 교복을 입으면 행실이 좋아지고 학생들 간 같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인식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는데, 교사의 90%와 학생의 50%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 아닌지 알아보기에는 교복을 입지 않는 학교가 너무 적지만 말이다.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에서야 때로 코믹하게까지 느껴지는 ‘교복 분쟁’이지만, 이런 시위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나 문제적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교복에 대한 항의로 표출되는 불만의 기저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겠거니 짐작해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