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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 이슈 톡톡

아동학대사건 보도와 피해자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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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양부모가 어린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16개월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정인이(가명) 사건’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사건 발생 직후에는 피해아동에 대한 정보가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사건의 본격적인 공론화와 함께 피해아동의 사진과 인적사항은 물론, 양부모의 이름과 고향, 출신 학교 등 사건 관계자의 신상정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여 아동학대 예방 및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는데요. 반면 관련 법 조항을 위반해 아동학대사건 피해자의 사진과 신상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제작진이 고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참고기사 : <베이비뉴스>). 그렇다면 아동학대사건 보도에 있어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아동학대사건 당사자의 식별정보 공개 금지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제2항은 아동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은 물론 신고자 등 사건의 관계자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한 시민단체에서는 이 법률 조항을 근거로 방송을 통해 ‘16개월 아동학대 사망사건’ 피해아동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과 사진을 공개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프로그램 담당 PD를 고발하기도 했습니다(참고기사 : <미디어오늘>).

한편 위 조항과 관련한 헌법소원도 있었는데요. 헌법재판소는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제2항 중 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식별정보 보도를 금지하는 내용이 언론·출판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22. 10. 27. 선고 2021헌가4 결정). 보도금지를 통해 달성하고자하는 ‘피해아동 보호’라는 이익에 비추어 해당 심판대상조문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죠. 헌법재판소는 ‘피해아동 보호에는 사건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로부터의 보호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는데요.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 친인척 등 피해아동과 평소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결국 피해아동의 사생활 노출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아동학대사건 관련 보도기준들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처벌법」 외에도 아동학대사건을 보도할 때 지켜야할 사항들을 정해놓은 다른 기준들도 있는데요.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함께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을 마련하였고, 앞서 언급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 이후 2021년에는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에 아동학대사건 보도 관련 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기자협회가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했고, 지난 5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부가 아동학대보도 권고기준을 수립하고 그 이행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었죠(참조기사 :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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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로 인한 2차 피해 방지 노력

아동학대사건 보도에 대한 위원회의 시정권고심의는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아동학대사건 보도는 공익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보도이지만, 그러한 보도를 할 때에는 피해아동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간혹 보도에서 학대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사진이나 CCTV 영상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아동학대 가해 수법과 피해 상태를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보도하는 것은 모방범죄나 피해아동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2021년 신설된 「시정권고 심의기준」 아동학대사건 보도 관련 조항은 아동학대사건의 피해자, 학대행위자 등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공표하거나 학대행위나 피해상태를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는 등 자극적으로 보도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례] 아동학대사건을 보도하면서 학대행위나 피해상태를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해 시정을 권고한 사례

모 언론사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보도하면서 아동학대의 가해 수법과 피해 상태를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에 위원회는 “비록 보도목적이 아동학대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고 재발방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 하더라도, 학대행위나 피해상태를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한 부분은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2차 피해를 야기하거나 모방범죄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면서 해당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등 적절히 조치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나아가 한국기자협회 등은 아동학대사건을 보도하면서 사건명에 피해아동의 이름을 붙여 지칭하는 것은 지양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요. 피해아동의 이름을 따 사건을 명명하면 사건을 빠르게 공론화해 신속한 법제도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심코 붙인 명칭이 자칫 피해아동과 그 가족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2021년 1월, 정부는 이른바 ‘정인이 사건’을 언급하는 데 있어 피해아동의 이름을 포함해 부르지 않고 ‘16개월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 지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동학대사건 보도, 심도 있는 논의 이어가야할 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례와 헌법재판소 결정,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비롯한 다양한 아동학대사건 관련 보도기준이나 조항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데요. 아동학대사건 보도 시 보도를 통한 피해자 등 당사자의 정보공개는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사생활 침해나 초상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시켜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제고와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공개의 공익적 필요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아동학대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지금, 아동학대사건 보도에 있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2차 피해 방지, 사생활 및 초상권 등의 보호’라는 여러 논쟁적 쟁점들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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