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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視線)

두고 봅시다

  • 권희경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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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아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보통 이 표현은 ‘과연 당신 뜻대로 되는지 벼르고 기다리면서 살펴보겠소’ 또는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테니 기다리시오’라는 뜻으로 쓰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런 말과 생각을 조정에 임하는 위원들이 좀 더 자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당장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더 두고 보면서 사정을 살피자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이지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일단 결론을 내리고 나면 사실이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나 근거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외면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지요. 아전인수(我田引水)적 사고와 행동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향으로서 보편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1950년대 중반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종말론을 믿는 집단에 잠입한 적이 있습니다. 지구가 대홍수로 멸망할 것이며, 외계 신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 받는다고 믿는 집단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고 가족과 헤어지고 종말을 기다렸습니다. 예고된 멸망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교주는 “신이 신자들의 열성에 감동해 세상을 구원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신자들은 교주의 예언이 빗나간 데 실망하거나 분노하기는커녕 열광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종말론이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파탄났지만, 종말론을 주장한 사람들은 건재합니다. 종말론을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종말은 분명히 올 것인데, 단지 날짜 계산을 잘못했다’, ‘불쌍해서 신이 멸망을 취소한 것이다’라는 합리화에 기꺼이 동조합니다. 교주가 틀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리석게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입니다. 레온 페스팅거는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과 반대되는 정보를 접했을 때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태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불렀는데, 확증편향은 심리적 불균형 상태인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외계에서 신이 온다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들만이 확증편향을 가질까요? 미국의 브랜든 메이필드(Brandon Mayfield) 사건을 보시지요.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통근 열차 4대가 연쇄폭발하면서 200여 명의 사망자와 2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테러 당시 불발탄이 담긴 봉투에서 지문이 발견되자 스페인 수사당국은 이 지문을 전 세계 수사기관에 보냈는데,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지문의 주인을 가장 먼저 찾아냈습니다. 이집트 국적의 무슬림과 결혼하고 무슬림으로 개종한 변호사 ‘브랜든 메이필드’였습니다. FBI 지문감식관들은 폭발 현장에서 나온 지문이 메이필드의 것과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메이필드는 “미국 밖으로 나간 적도 없고, 스페인은 더더욱 가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텅 빈 출입국 기록에서 결백을 읽어내는 대신 흔적도 남기지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리스트’의 간악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2주 뒤 문제의 지문은 ‘우나네 다우드’라는 알제리 국적자의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스페인 수사당국이 동일한 지문을 추적해 다른 사람의 것임을 찾아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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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A Review of the FBI’s Handling of the Brandon Mayfield Case>라는 보고서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문을 판독하는 데 수사관의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라고 합니다. 흔히 기계나 컴퓨터가 지문의 동일성을 판독한다 생각하지만, 지문의 동일 여부를 판단하는 건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드리드 테러 사건에서 FBI는 지문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했고 이를 통해 해당 지문과 유사한 지문을 가진 20명을 추려냈습니다. 이를 FBI 지문전문가들이 대조 작업한 끝에 불발탄의 지문이 메이필드의 것이라고 결론내린 것이지요.

사람의 눈과 판단이 관여된 이상 오류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테러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의 왼쪽 윗부분은 메이필드의 지문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FBI 조사관은 ‘불발탄 위에 우연히 다른 사람의 지문이 찍혔다’라거나 ‘메이필드의 다른 손가락이 찍혔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이를 무시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문 분석 과정에서 메이필드가 최근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이집트 출신 이민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전문가들은 이런 정보가 FBI 조사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결국 FBI는 해당 지문이 메이필드의 지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확증편향으로 인한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메이필드는 정부로부터 2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확증편향에 빠져들기 더 쉽고, 전문 지식이 있다고 해서 확증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중간에 바꾸면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을 한 꼴이 되어 ‘전문가답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더더욱 자신의 의견에 맞는 증거만을 찾게 되어 점점 더 확증편향의 늪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언론조정 심리를 열기 전 제출된 서면만을 보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위험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서류만을 보고 마음속으로 결론을 먼저 내려버리면, 진실이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보다 ‘내 결론이 맞다’고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학내 현안이나 사업 계획서의 방향성을 두고 토론을 할 때도, 일단 어떤 입장을 취하거나 결론을 내리고 나면 그 전보다 더 강경해지고 제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나 자료만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은 패배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최근에는 중간에 의견을 바꾸기도 하고, ‘그 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아니 달라졌다’는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확증편향성을 갖고 있지만, 이를 인지하고 주의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더 열린 자세로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지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과도한 신념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라고 했습니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지나친 확신”이라고도 경고했죠. 그러므로 저도 제안합니다.

“어디 한 번, 두 번, 세 번 두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