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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살인의 추억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1

우리는 뉴스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악인에 대해 듣습니다. 유태인들을 학살한 히틀러,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독재정권의 수장들. 이들에게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까’ 싶을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악함을 보고, 집단 학살과 전쟁 범죄의 역사를 공부하며 그들의 악행에 치를 떱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가 봐도 악인들인데,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나 대통령으로 살았을까” 우리의 선(善)과 악(惡)에 대한 기준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살인은 범죄임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고,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이런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내전으로, 혹은 독재 정권하에 죽임을 당합니다. 전쟁이 나면 수천 명, 수만 명의 사상자가 납니다. 전쟁은 마치 허가 받은 살인 면허처럼 보입니다. 근본적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살인은 정당하고, 어떤 살인은 죄로서 처벌을 받는 걸까요?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전직 이라크 고위 공무원 얘기를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정부에서 일하던 40대 중반 정도의 최고위급 정부 관리로 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과 알게 되어 그 남편과도 알음알음 친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담 후세인 정부의 고위 관리라고 하면, 그 정권에 엄청나게 충직한 공무원임을 말합니다. 그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부촌인 바빌론이라는 지역에 엄청 큰 저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 가면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십수 명이었습니다. 웅장한 거실과 럭셔리한 그의 가족들. 한눈에 봐도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끔 저를 집에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럴 때마다 비싼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셨습니다. 술 못 먹는 저는 콜라나 홀짝이며 그의 가족들과 멋진 저녁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 그 관리는 저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잡아넣고 죽였는지 무용담처럼 얘기했습니다. 한번은 사담 후세인의 정적인 모 국회의원을 죽인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퇴근하는 그 국회의원을 강제로 차에 태워 납치해 모처에 있는 지하실에서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와...어떻게 법이 있는데도 자기 마음대로, 그것도 한 나라의 국회의원을 체포영장도 없이(설사 있더라도 경찰도 아니고 검사도 아닌 공무원 신분으로) 납치해 살해한단 말인가” 하고 놀랐습니다. 살해한 국회의원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얘기하면서는 껄껄 웃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저뿐만 아니라 그의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이 잔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버지는 ‘애국자’라고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2

2003년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하자 사담 후세인 정부의 중요한 정보를 미군에 넘기고 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두바이로 이민을 간 그는 여전히 매우 안락하고 편안하게 생활 중입니다. 그렇게 충성을 다하던 그가 외치던 ‘애국’은 어디로 가고, 공무원 시절 받은 뇌물로 축적한 재산과 미국에게 받은 돈으로 말이죠.

두바이에 갈 일이 있어 그에게 전화하면 엄청 반가워하며 그 옛날처럼 저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의 아이들은 모두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부인들과 함께 삽니다. 아이들만 없을 뿐 그 옛날 이라크에서 저를 초대했던 광경과 비슷합니다.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 집단이나 일본 제국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악에 대한 나름의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그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겁니다. 살인을 단죄하는 보편타당한 원칙이 없다면, 어떤 살인은 자기중심적 해석으로 변명 가능한 정당한 살인이자 누군가에겐 무용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조직이 시키는 대로만 하다보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덫에 갇힐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통찰과 문명을 바탕으로 보편타당한 악의 원칙을 기준 삼아 악인에 대한 단죄를 고민하는 것이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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