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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실크로드가 마약로드로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1

아프가니스탄으로 취재를 다닐 때는 비자를 받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먼저 가야했습니다. 한번은 촬영 스케줄에 쫓겨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비자를 받지 못하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 도시 페샤와르에 있는 아프간 영사관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비자 신청을 하며 기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보니, 아프간 영사님이 언제까지 받으면 되냐고 되묻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나오면 좋다고 하니 제 여권을 들고 가며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불과 30분도 안되어서 비자가 나왔습니다. 영사님이 “웰컴 투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말하며 여권을 돌려줬습니다. 비자가 생각보다 빨리 나와 신나서 여권을 들여다보는데 뭔가 찰흙 같은 걸 건네줍니다. 크기는 도장 하나 정도? 이게 뭐냐고 물으니 너무나 태연하게 ‘헤로인’이라고 답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헤로인은 마약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나라의 영사가 비자와 함께 헤로인을 주다니요.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거부하고 안 가져간다고 하니 아프간 영사님은 제가 예의상 사양하는 거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괜찮다고, “내가 선물로 주는거니~”라고 합니다. 정말 황당합니다.

마약을 받으면 제가 한국에서 형사 처벌을 받게 될 텐데, 여기서는 안 받으면 예의가 아닌 모양새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운전기사가 자기가 냉큼 챙겨 받습니다. 현지말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 다 행복해보입니다. 영사관을 나와 차를 타고 국경으로 향하는데 운전기사가 “역시 정부 사람들은 품질도 좋은 헤로인을 가지고 있네”라고 말합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마약의 심각성을 잘 모릅니다. 아이가 울고 보채면 엄마가 마약 한 숟갈을 먹입니다. 아이는 금방 기분 좋아져서 아주 잘 놉니다. 카불의 마약중독 센터에 가보면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중독자가 되어 넋을 놓고 창문을 바라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선물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혹은 아픈 병자에게 치료약으로. 아프간 사람들은 마약을 선물합니다.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2

아프가니스탄에서 본 양귀비밭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빨간 양귀비꽃을 보고 저는 넋이 나갔습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양귀비밭은 헤로인의 재료가 되는 아편의 주생산지입니다. 수확기에 들어선 양귀비꽃은 초록 대롱을 남기는데, 이걸 칼로 썰면 하얀 진물이 나옵니다. 그게 마약의 재료입니다.

헤로인은 아주 중독성이 강한 마약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헤로인의 90%를 생산하는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유엔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했습니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양귀비밭을 불태웠습니다. 수확기에 접어든 양귀비밭을 연합군이 나서서 불태워 버리자 양귀비 농부는 울면서 주저앉습니다. 농부는 이걸 팔아야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배추나 시금치처럼 농부에게 양귀비는 그저 돈이 되는 농작물일 뿐입니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초토화된 양귀비밭을 보며 허탈해하는 농부에게 탈레반이 접근합니다. 연합군이 양귀비밭을 불태우러 오면 우리가 전투를 해서 막아줄 테니, 아편을 팔면 일정 퍼센트의 수고비를 달라는 것입니다. 농부 입장에서는 다 잃는 것보다 덜 잃는 쪽을 택합니다. 탈레반은 이렇게 ‘전투비’를 받아 재정을 확보합니다. 농부는 마치 조폭들에게 돈을 뺏기듯 울며 겨자 먹기로 탈레반에게 아편 판 값을 상납합니다.

아프간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 전보다 헤로인 생산이 아주 크게 늘었습니다. 농부 입장에서 탈레반에게 상납을 하고도 기존 수익을 보존하려면 무조건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경제 공식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헤로인 풍년’ 입니다. 그렇게 생산된 많은 양의 헤로인이 아프간 이웃나라인 중앙아시아, 러시아 그리고 미국에까지 흘러들어갑니다. 특히 올해 아프가니스탄은 유례없는 헤로인 풍년이랍니다. 국제 원조가 많이 끊겨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이제 아프가니스탄에서 돈 되는 작물이라곤 양귀비밖에 없습니다.

과거 실크로드라 불리던 그 길들이 이제는 마약을 운반하는 ‘마약로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산과 공급이 많아지면 자연히 전 세계에서 헤로인을 접하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과잉 생산되며 헤로인 값도 싸졌으니까요.

미국과 유엔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마약과의 전쟁이 오히려 ‘마약 풍년’만 만들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이 마약의 원료인 양귀비 재배를 대체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지 못한 결과입니다. 양귀비꽃은 참 예쁘더만, 어찌 그리 인간에게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지...해로운 헤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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