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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 이슈 톡톡

인권보도를 향한 길라잡이, 시정권고심의 제도

PAC 이슈 톡톡 1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함께 발간한 <2023 인권보도 참고 사례집>에서 인권보도를 위해 참고해야할 사항 중 하나로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이 소개됐습니다. 시정권고심의 제도란 ‘언론보도의 개인적・사회적・국가적 법익 침해 여부를 심의하고 침해사항이 확인되면 보도를 한 언론사에 동일한 법익 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정을 권고하는 제도’로 위원회 법정업무 중 하나인데요. 시정권고 심의기준은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취재・보도하는 과정에서 ‘법익침해’라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위원회는 시정권고 심의기준에 비추어 법익 침해 우려가 큰 1,239건의 언론보도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는데, 인터넷 기반 매체(뉴스통신, 인터넷 신문) 비중이 90%에 달했습니다. 위원회는 이처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 기반 매체에 대해 매년 시정권고 결정 수용률(시정권고 결정에 따라 기사를 수정·삭제한 비율)을 확인하고 있는데요. 지난 2022년 수용률은 67.8%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해 위원회 시정권고소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시정권고 결정 사례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을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2022년도 시정권고사례집>에 실린 주요 시정권고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PAC 이슈 톡톡 2

사회적 법익 침해 사례 : 차별적 표현 및 재난보도 관련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에도 차별이 녹아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눈먼 돈’, ‘꿀 먹은 벙어리’ 등과 같은 장애를 부정적인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표현부터 ‘여경’ 등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 그리고 ‘○린이’ 처럼 특정 연령대를 비하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표현 등이 그것입니다. 시정권고 심의기준에 따르면 언론은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종교, 나이, 장애 등을 이유로 편견적·경멸적 표현을 하거나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해서는 안 되는데요. 위원회는 이에 근거해 지난해 50건의 시정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난해에는 특히 장애 차별적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관련 표현을 사용한 언론보도에 대해 적극적인 시정권고 결정을 내리는 등 시정권고심의 제도에 내실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례 1] 장애인 차별적 표현에 대해 시정을 권고한 사례

모 언론사는 보조금 부정 수급 환수율에 관한 온라인 기사에서 정부 보조금을 ‘눈먼 돈’에 비유해 표현했습니다. 이에 위원회는 해당 표현이 장애를 부정적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표현이라고 판단하고, 장애에 따른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 공표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했는데요. 해당 언론사는 위원회의 시정권고 결정을 수용하여 문제가 된 표현을 ‘애먼 돈’으로 수정했습니다.

[사례 2] 특정 국적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에 대해 시정을 권고한 사례

모 언론사는 여의도 불꽃축제에 참가한 시민 중 일부가 불법주차를 하거나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등 시민의식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하면서 “중국인 같다”, “중국인 못지않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보도했습니다. 이에 위원회는 특정 국민에 대한 편견 내지 경멸이 전제되어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해당 국적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시정을 권고했습니다.

PAC 이슈 톡톡 3

지난해 이태원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정말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는데요. 언론이 이태원 참사 관련 속보를 전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거나 피해자들의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노출하는 등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지 않은 보도를 쏟아내면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언론은 재해나 대형 참사를 보도함에 있어 그 참상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보도해 당사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시청자에게 불안감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위원회는 지난해 위 사항을 위반한 20개 보도에 대해 시정권고를 결정했는데요. 언론보도에 대해 재난보도 관련 심의기준이 적용된 사례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처음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사례 3] 이태원 참사 현장을 보도하면서 비식별 처리 없이 피해자들의 사진을 공표하여 시정을 권고한 사례

모 언론사는 이태원 참사 당시의 상황을 보도하면서 심폐소생 중인 피해자 등의 신체가 드러난 현장 사진을 공표했습니다. 위원회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과 현장의 사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신체 일부를 드러낸 채 생사여부가 불분명한 희생자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은 피해자와 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시정을 권고했습니다.

개인적 법익 침해 사례 : 범죄사건 보도 관련

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2009. 9. 10. 선고 2007다71 판결),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에 관한 내용은 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원칙(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이며, 같은 맥락에서 범죄 피의자의 초상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위원회 시정권고소위원회는 지난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해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피의자 신원에 관한 정보를 공표한 언론보도 56건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습니다.

[사례 4] 범죄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여과 없이 공표하여 시정을 권고한 사례

모 언론사는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해 보도하면서 피의자인 학생의 소속 고등학교와 전교 등수, 교내 활동 등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를 공표하였습니다. 위원회는 사인에 불과한 피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를 공표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 및 익명보도의 원칙 등에 비추어 당사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시정을 권고했습니다.

위원회의 시정권고심의 제도는 ‘언론사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법익 침해적인 보도를 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고,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한편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참고 : 계간 <언론중재> 2023년도 봄호 「시정권고 제도의 운용 성과와 전망 : 2022년 시정권고 분석」). 위원회는 지난 한해 시정권고 심의기준의 명확성을 높이기 위해 불명확하거나 일관성이 부족한 용어를 찾아 다듬는 한편,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보도에 있어 당사자들의 신원이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개정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위원회는 앞으로도 시정권고심의 제도가 인권보도의 나침반이자 길잡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 장애인, 가정·성폭력 및 재난 피해자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대상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각종 권리 침해적인 보도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점검하는 한편,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이 언론의 취재・보도 과정에서 귀찮거나 방해되는 요소가 아닌 반드시 숙지해야할 중요한 원칙으로 정확히 인식될 수 있도록 시정권고 제도를 더욱 엄정하게 운용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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