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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media of the world

정정보도의 딜레마와 디지털 해법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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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보도는 저널리즘의 오랜 고민거리다. 내용이나 형식도 그렇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정정의 방식에 대한 사회적, 기술적 압박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꼴의 진화는 좀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언론사는 유독 더하다.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정정보도의 역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시간 그리고 비밀주의와 씨름해야 하는 모든 ‘인간’ 기자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기에 정정은 저널리즘과 동행하는 존재다.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요청하지 않는 이상 구석진 공간에 숨겨두고 싶은 치부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정보도는 기자에게, 그리고 언론사에게도 필요하지만 덮고 가고 싶은 양면적 대상이다.

만약 정정보도 자체가 언론사의 신뢰를 낮춘다면 어떠할까? 요즘처럼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 모를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정에 대한 투명한 절차가 저널리즘의 신뢰를 높인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비록 2018년이긴 하나 미국 시민의 90%가 언론사에 대한 신뢰는 정확성에 대한 헌신과 정정보도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에 달려있다고 응답한 나이트재단의 보고서1)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반대의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정정보도가 시민의 정확한 사실 이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지만 개별 언론사의 신뢰에는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과 애리조나 대학이 공동으로 수행한 이 연구는 정정보도의 신뢰 제고 효과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2,862명을 대상으로 허위 보도를 담은 트윗을 제시한 뒤, 정정한 경우와 아닌 경우 해당 보도의 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정정 트윗 이후 응답자의 정확한 사실 이해도는 높아졌지만, 해당 보도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낮아진 것이다. 특히 허위 정보를 보도한 언론사가 직접 정정을 했을 경우에도 신뢰 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 언론사 입장에선 정정보도를 머뭇거리게 하는 연구 결과인 셈이다.

정정보도의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치부이기에 감추고 싶은 은밀한 욕망, 그럼에도 저널리즘의 윤리와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교집합 없는 두 감정의 충돌에 신뢰 하락의 가능성마저 보태지면 정정보도는 뉴스룸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처지로 내몰리고 말 것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국내 언론사들은 공개적 정정을 택하는 대신 ‘디지털 삭제’로 대응하고 있다. 기사 삭제 사실을 아예 공표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 연구진들도 그러한 해석을 우려했다. 연구진들은 이 논문에서 “신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실질적으로나 표준화된 측면에서나 수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적 혜택에 비해 작다”라고 강조했다.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모색해 언론사가 더 빈번하고 눈에 띄게 정정 기사를 게재할 유인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대중의 정보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는 말도 보탰다. 섣부른 결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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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해법이다. 뉴스룸이 자사 보도의 신뢰 하락을 이유로 정정보도를 등한시하는 건 건강한 솔루션이 되기 어렵다. 정확한 사실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이어서다. 위 논문에서도 확인되듯, 언론사가 직접 정정보도를 했을 때 응답자들의 정확한 사실 인지 효과는 훨씬 높아졌다. 보도 당사자의 노력이 후행되지 않으면, 다수의 시민들은 그릇된 정보를 신념처럼 믿게 된다는 것이다.

핵심은 수용자의 정확한 사실 이해와 보도의 신뢰도 제고 모두에 기여하도록 정정보도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두 가지 디지털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오보의 정정 과정에 수용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정정의 프로세스를 혁신함으로써 신뢰 제고를 동시에 모색하는 접근법이다. 베트뉴스(VettNews)2)라는 스타트업은 Cx라는 툴을 개발해 모든 디지털 기사에 수용자들이 직접 오보를 신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이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전달함으로써 기자와 수용자 간의 간극을 좁혀내고 있다. 이미 25개 이상의 영미권 언론사들이 이 툴을 통해 오보와 정정을 관리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애리조나주립대 크롱카이트스쿨 팀이 개발한 ‘코렉스(Correx)’3)라는 디지털 도구다. 주로 소셜미디어에서 오보를 공유한 사용자를 추적해 정정보도 내역을 한꺼번에 전달하도록 도와준다. 뉴스룸이 오보 내용을 적시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정정보도의 효과를 극대화해주는 기술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방대하면서도 적극적인 정정 태도를 수용자들에게 드러냄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툴을 처음 활용한 미국 캔자스시티 스타 신문사는 “독자들은 이 툴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으며, 정보 업데이트와 우리의 노력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4).

정확한 사실 이해와 신뢰 제고를 동시에 잡는 건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해선 안된다는 것이 저널리즘의 언명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정정보도의 ‘디지털 전환’은 무척이나 더뎠다. 신문과 방송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한 오보를 어떻게 정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소홀했다. 전통 미디어에 비해 확산 속도가 수배, 아니 그 이상임에도 질적 개선의 노력은 드물었던 게 사실이다. 여전히 기사 본문과 분리된 채 정정보도가 디지털로 발행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포털에 역할을 내맡기는 경우도 흔하다. 신뢰도의 추락은 어쩌면 저널리즘 행위자들의 게으름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Cx와 코렉스는 정정보도의 디지털 진화를 꾀하려는 초기 모델이다. 수용자를 참여시키는 동시에 소통을 강화하고 디지털 공간에서 오보 확산의 속도를 완화하려는 실험적 시도다. 현재 시점에서 완벽한 해법이라 하기는 어렵다. 다만 수용자 신뢰와 사실 인지라는 두렵고 무거운 과제 앞에 직면한 언론사들이 ‘정정 회피’라는 결론으로 내닫지 않도록 보정해주는 기여는 톡톡히 해내고 있다.

참조

참고문헌

Freitag, J., Gochee, M., Ransden, M., Nyhan, B., Roschke, K., & Gillmor, D. (2023). The Corrections Dilemma: Media Retractions Increase Belief Accuracy But Decrease Trust. Journal of Experimental Political Science,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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