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인터넷 우여곡절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한국은 인터넷 강국입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지역이 없습니다. 산에 올라가도 핸드폰이 터져서, 급하면 언제든 영상이나 파일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취재하는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곳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쓰는 나라도 흔합니다. 인터넷 사용료가 비싸서 카드 비밀번호를 누르고 어쩌고 해야만 간신히 이메일 하나 정도 보낼 수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웹페이지 한 장 넘어가는데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속 터지는 인터넷 환경인데, 가끔 한국에서는 한국 인터넷 사정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용량 파일과 영상을 보내고는 저보고 왜 안 열어 보냐고 합니다. 그런 대용량 파일은 다운로드 받는 데만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운로드 되다가 멈추기도 합니다. 한국처럼 인터넷이 되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이 느린 인터넷이 감당하기 힘든 용량을 보내놓고는 현지의 저에게 급하다고 빨리 열어보랍니다. 설명을 한들 한국에선 이해를 못 합니다. 느린 인터넷 환경에 대한 실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지에서는 용량이 아주 작은 워드 파일 하나를 열어보거나 보내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론 아예 안 보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밤새 전송을 걸어놓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미칠 노릇입니다.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답답합니다.
인터넷이 통제되는 나라도 많습니다. 독재국가에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제합니다. 구글 접속도 못하게 막아 놓고, 페이스북도 막아 놓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사정을 이해 못하고 SNS에 들어가서 뭘 보라고 하면 현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독재국가의 경우 가상사설망(VPN)이라는 편법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우회접속하면 해당 국가가 막아 놓은 앱이나 사이트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핸드폰이나 노트북에 VPN이 깔려있으면 압수되거나 잘못하면 어디론가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타지키스탄이라는 나라에서 경찰에게 핸드폰을 압수당한 적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금지하는 나라였는데, VPN을 깔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하곤 했습니다. 라이브 방송을 한 다음날, 숙소로 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그렇게 힘없이 핸드폰을 뺏기고 먼 산보며 망연자실했었습니다.
시리아에 취재 갔을 때는 공항에서 핸드폰을 압수당하기도 했습니다. 황당하게도 ‘사과폰’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S사의 핸드폰은 압수를 안 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시리아 정부가 S사의 협찬을 받았나?’ 아니면 ‘사과폰 회사와 문제가 생긴 걸까?’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시리아 정부 관리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는 ‘다른 핸드폰은 모두 해킹과 도청이 가능한데 사과폰은 해킹이 힘들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려줬습니다. 그래서 시리아에 취재를 갈 때에는 반드시 국산 핸드폰을 들고 갑니다. 도청이 되더라도 뺏기지는 않으니까요. 독재국가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휴대폰으로 소통을 할 때는 도청과 해킹의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 취재를 해야 합니다. 이것도 한국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라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독재국가라 하더라도 몰래몰래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편법이 아름아름 다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더 빨리 이런 편법을 터득합니다. 2009년 이집트로 취재를 갔을 때 한 고등학생이 저에게 엄청난 질문을 했습니다. “아줌마, 다른 나라에서는 파라오(최고 통치자)를 진짜 사람들이 직접 뽑아요?”라고 말입니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인 무바라크 대통령은 30년 가까이 장기 독재 중이었는데, 국민들에게는 파라오처럼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사실 추앙이라기보다는 공포 정치로 모두들 대통령을 무서워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국민적 투표를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고등학생은 어떻게 투표를 알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학생은 “인터넷에서 보니 다른 나라는 투표를 하던데요, 왜 우리는 못해요?”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막 인터넷 회선이 가정으로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여행지인 이집트의 호텔들이 서구 사회 여행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광케이블 인터넷을 깔기 시작했는데, 기왕에 깔린 인터넷 회선을 이집트 각 가정에도 보급했던 겁니다. 주로 청소년이 있는 집에 인터넷망이 설치됐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린 것이죠. 다른 나라는 이렇더라, 저렇더라. 집안에서 대륙을 넘나드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 2012년 이집트 재스민 혁명 때 이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서 혁명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바라크 대통령은 힘없이 쫓겨났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도 저는 중국인들이 SNS를 통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 정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터넷은 세상을 뒤엎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취재를 하다보면 인터넷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제3세계를 취재하면서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인터넷 속도에 고군분투합니다. 독재국가에 가서는 마치 고등학생이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핸드폰을 쓰는 것처럼 몰래몰래 쓰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비굴해지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취재를 하는 사람으로서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속은 터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