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취재 현장의 얼굴들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넌 고생 안한 얼굴이야”
취재를 가면 가끔 듣는 말입니다. 제가 취재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제3세계이거나 분쟁과 내전으로 기아와 폭력이 난무하는 곳들입니다. 그런 곳의 사람들 눈에는 제 얼굴이 고생을 전혀 안 한 얼굴로 보이나 봅니다. 그곳 사람들이 저에게 ‘어릴 때부터 아무 걱정 없이 잘 사는 집 딸로 자란 것 같다’는 말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대한민국의 386세대로서 한국에서 자라며 어릴 때 독재 시대와 입시지옥을 거쳐 나름 인생의 평지풍파를 겪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입니다. 하긴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서의 가난과 기아, 전쟁이 보통 일입니까.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엄청난 일들을 늘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겪어서 전쟁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니, 그 얼굴들과 비교하면 내 얼굴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제 얼굴은 한국에선 아주 평범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얼굴이 그런 나라들에선 너무나 눈에 띄는 이방인의 얼굴입니다. 마치 구한말 서울에 나타난 미국인의 얼굴처럼 말입니다. 더구나 저는 옷차림도 다르고 다른 나라말을 쓰며 심지어 남자들과 함께 일합니다. 거기에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 평범해 보이려야 그럴 수가 없을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취재할 때는 사람들이 저를 ‘백인(white people)’이라 부르는 황당한 경험도 했습니다. 제가 “아니에요, 저는 아시안 황인종이에요”라고 말해도 “당신은 피부가 하얗잖아요. 나처럼 까맣지 않고”라고 답합니다. 헐. 요즘은 피부색 논하면 문명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 받는 세상이라는데, 저는 말문이 턱 막힙니다. 어떤 아랍 여성은 제 피부를 보고 “한국 화장품이 참 좋은가봐. 네 피부가 너무 좋아서 부러워”라고 말해 저를 당황시킵니다. 취재 다니느라 바빠 화장품을 잘 챙겨 바르지도 못 하는데 말입니다. 다만 사막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사는 아랍 여성들보다는 조금 나을 뿐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시아인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였던 적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시골에서까지 사람들이 CD를 돌려보며 <대장금>을 시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슬람 복장과 <대장금>에 나오는 우리의 한복이 비슷해 보여 공감도가 높았나 봅니다.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에 갔더니,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에서 저를 보았다는 겁니다. ‘이건 무슨 말이지?’ 생각하며 어리둥절해 있으니 <대장금> 속 배우 이영애 씨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 할 당시 머리를 길게 묶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 아시아인인데다가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저를 이영애 씨로 착각했나 봅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얼굴과 절세미인 이영애 배우의 얼굴이 똑같아 보인다니, 우습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임베딩(종군기자 프로그램)으로 이라크에서 취재할 때는 미군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습니다. 처음 부대 배치를 받았을 때, 미국 병사들이 저에게 나이를 물었습니다. 한창 여성에게 호기심을 가질 18세에서 20대 초중반의 나이인데 남자만 있는 보병 부대에 있으니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제가 30대 후반이라고 이야기하니 다들 놀랍니다. 스무 살 갓 넘은 줄 알았답니다. 자기들 엄마와 동갑이라고 하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저를 나이보다 어리게 본 것은, 외국인들은 아시아 여성의 얼굴만 보고 나이를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후 군사 작전을 함께 하면서 저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별별 에피소드를 다 겪으며 새가슴 김 피디는 전 세계 많은 나라를 취재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얼굴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취재하며 울고 웃었습니다. 결론은, 얼굴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서로 마음이 통하면 그 다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입니다. 그 얼굴들을 기억하며 오늘도 지구 저 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공감능력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벌한 뉴스들을 들으며 마음 아파하고 상처받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 얼굴과 마주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다시 용기를 내 그 현장으로 뛰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