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악의 정체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종군 취재를 하다보면 ‘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인간이 악하다고 하면 얼마나 악할까요. 평범한 대한민국에서 자란 저는 기껏해야 연쇄 살인마 정도의 ‘악함’을 최고치로 알고 자랐습니다. 2017년, 파카스탄 남부 발루치스탄 지역을 취재할 때의 일입니다. 그곳은 탈레반 세력은 물론 중소 무장 세력들이 우후죽순 있는 지역입니다. 제 눈에는 시골 촌락으로 보였지만, 조폭 같은 무장 세력이 여럿 있는 마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 눈에 저는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카메라를 든 외국인 저널리스트니까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외국인을 처음 보는 듯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듭니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창문에 우르르 붙어 저를 구경했습니다. 동물원 원숭이 보듯 말입니다. 한번은 작은 재래시장 같은 곳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저를 보러 꾸역꾸역 모여드는 인파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난감해하는 제 앞에 어느 총 든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그중 우두머리 격인 듯한 머리 긴 청년이 현지인들에게 뭐라고 말하니 순식간에 인파가 흩어 졌습니다. 그는 내 옆에 와서 이제 촬영하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묵는 숙소로 총 든 장정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자기 두목이 저를 정중히 초대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이벤트도 있으니 카메라를 들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호의가 고마워 기꺼이 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마을 구석에 있는 어느 저택으로 안내를 받았고,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 편에 정원이 제법 잘 손질되어 치자꽃 향기가 그윽했습니다. ‘아, 예쁜 정원이구나’하고 감동하고 있는 사이, 그 무장 세력의 두목이 부하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벤트를 먼저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저널리스트라고 하니 제가 특종을 드리겠습니다. 촬영하세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기대하며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부하들이 어떤 젊은 남자를 질질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희생자의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바로 기절했습니다. 기절하는 그 순간에도 아이러니하게 치자향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후에 저는 그 무장 세력 두목이 왜 그런 ‘이벤트’를 벌였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황당하게도 그 이벤트는 그가 저에게 베푼 ‘호의’였다고 합니다. 특종을 하게 해주고 싶은 ‘친절한 마음’이었다고. 그는 자신이 악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태어나 자라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수시로 살인을 목격하며 성장한 탓에 도덕성과 인간성에 대한 기준을 아예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이후 반년 가량을 그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치자향과 뒤섞인 사람이 스러져가는 소리...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가, 그 악함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면서 세상의 악은 제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종군 취재를 하며 이런 현장에서 자연히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2002년 사담 후세인 정부가 무너지기 전, 이라크에서 취재할 당시 이라크 고위 공무원을 한 명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대 정도였고 부인이 두 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중 한 명과 우연히 알게 되어 그 집에 수시로 초대를 받았고, 그 남편인 고위 공무원과도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정부의 정보국에서 일하는 본분에 충실한 공무원이었습니다. 제가 그 집에 초대되어 가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잡아넣고 죽였는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놨습니다. 그 경험담은 마치 우리의 독재시절 ‘남산의 안기부’를 연상시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이라크 정부의 고위 공무원과 군 장성 대부분이 그랬듯, 그도 사담 후세인 정부의 중요한 정보를 미군에 넘기고 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두바이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이라크에서 받은 뇌물과 따로 모아둔 돈으로 두바이에서 아주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차 두바이에 가게 되면 그에게 연락하곤 합니다. 그러면 그 가족들은 저를 엄청 반가워하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가끔 저를 위해 시시콜콜한 중동의 뉴스를 메신저로 보내주기도 합니다. 이 분이 제게 한 말 중에 정말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 없지. 그저 사담의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고, 난 그 시스템에서 최선을 다한 거야. 죽이라 하니 죽이고, 하라고 하니 하고. 그게 공무원 아닌가? 나는 사담 정부에서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가장으로서 가족 먹여살려야 하니 뇌물이야 받을 수 있지. 어디 나만 받았나? 다~~받았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 집단도,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모두 이렇게 자기중심적 해석으로 죄를 피해가며 사람들을 죽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단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문명과 통찰이 없으면 다들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구나. 우리에게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조직이 시키는 대로 일했던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된 교육과 통찰이 인간의 문명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이며, 악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군 취재에서의 극한 악의 경험은 저널리스트로서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