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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엘리트 경찰의 타락과 옐로저널리즘

  •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1

런던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의 공식 명칭은 메트로폴리탄 폴리스 서비스(Metropolitan Police Service)다. 대개는 메트로폴리탄 폴리스라고만 하는데, 더 줄여서 ‘메트(MET)’라고 하기도 하고 ‘스코틀랜드 야드’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명칭이다. 이 별명은 런던 경찰청이 있었던 지역에서 유래하는데, 원래 런던 경찰청이 있던 동네 이름이 ‘그레이트 스코틀랜드 야드’였다. 그 동네에는 중세 시대에 스코틀랜드 왕족의 궁전이 있었다고 한다.

메트는 일찍이 1829년에 설립되었다. 영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근대적인 경찰 조직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속된 인원수가 4만 3천명이 넘으니, 영국에서 가장 큰 경찰청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할 구역이 가장 넓은 것은 아니다. 메트는 런던의 32개 자치구(borough) 및 히드로 공항을 관할하고, 왕실을 비롯한 왕족, 정부 관료, 영국 주재 외교관 등 주요 인물의 경호를 담당한다. 대테러 업무도 메트의 소관이다. 말하자면 영국에서 가장 우수한 엘리트 경찰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드높은 메트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리고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터졌으니, 메트 소속의 ‘데이비드 카릭’이라는 경관이 무려 18년간 성범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카릭이 소속된 부서는 의회, 정부청사 및 외교공관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런던 최중심의 정치·외교가를 무기를 소지한 채 활보할 수 있다. 메트 중에서도 특수 부서다. 카릭은 상대방 피해여성을 주로 데이트 어플에서 찾았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직업 및 임무를 상대의 신뢰를 얻는 도구로 사용했다. 카릭은 24건의 강간을 포함해 49건의 기소 혐의에 대해 죄를 인정했다. 여태껏 알려진 바로는 강간 피해자는 9명의 여성들이지만, 더 나타날지도 모른다.1)

카릭의 범행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특히 분노가 모아지는 지점은 그가 애초에 어떻게 경찰이 될 수 있었고, 그의 성품과 행실을 의심할만한 사건이 계속 있어왔음에도 어떻게 아무런 제재 없이 무장경찰로 근무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2001년에 경찰로 임용되었는데, 당시에도 전 동거녀에게 폭언과 상해를 가하고 주거침입을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가 경찰로 복무하는 동안 최소 9차례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심지어 동료들은 유난한 폭력성 때문에 그를 ‘개XX 데이브’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릭은 2009년 무기 소지를 허가받았고, 2021년 7월 강간 혐의가 제기된 이후에야 일부 직무가 정지되었다.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2

카릭이 보다 일찍 처벌을 받지 않은 데에는 피해자들이 신고를 취하하거나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탓도 있다. 카릭은 직접적인 성폭력 및 폭행을 가했을 뿐 아니라, 피해 여성들에게 언어적, 정신적 모욕을 주고 더 나아가 그들의 복장과 언행까지도 강력히 통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신고를 하거나 헤어지려고 시도하기를 두려워했는데, 그가 무장경찰이라는 직업을 여성을 협박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가까이서 경호한 유명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며 본인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을 과시했고, 피해 여성들에게 경찰 제복을 입은 사진이나 심지어 경찰용 총기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피해 여성들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면 본인이 바로 그 경찰이라고 답하거나, 마약을 숨겨둬서 처벌받게 만들겠다고 협박도 했다. 동료 경찰들은 경찰인 자신을 믿지 피해 여성들의 주장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카릭에 대한 여러 건의 민원과 신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속된 조직이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범행이 지속될 수 있었다. 즉, 메트는 그에 관한 문제 제기를 면밀히 조사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했다. 여기서 지적할 점은 메트 내부의 분위기다. 경찰들은 경찰 스스로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 면책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메트의 일부 부서에 여성혐오가 만연하여 여성에게 가해지는 범죄를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메트 수뇌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소속 경찰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내부고발을 독려하여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메트 경관이나 직원들이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천 건이 넘는 성범죄 및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새로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위험상황에 처하는 경우 상대방의 안전을 서로 책임지며 깊이 의지하고 감정적으로 끈끈하게 유대하는 문화가 있는 경찰과 같은 조직에서는 이와 같은 단순한 방책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래도 카릭과 같은 범죄자를 결국은 체포하고 엄벌에 처하는 모습, 관련자들이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 연일 떠들썩하게 널리 보도되는 것은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을 보도하는 ‘데일리 미러’나 ‘더 선’ 등 소위 황색지의 태도다. 이 신문들은 카릭을 ‘색마 경찰’, ‘메트의 괴물 경찰’ 등 과격한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피해자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하여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을 불필요할 만큼 시시콜콜 낱낱이 묘사하고 있다. 이 기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황색지들이 노리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정성’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슬며시 든다.

각주

  • 카릭은 36회 종신형을 선고받아, 앞으로 최소 3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복역하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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