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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media of the world

멀어지는 언론사의 소프트웨어 기업의 꿈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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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의 실리콘밸리화. 그것은 손에 잡힐 것 같은 꿈이었다. 플래티셔(Platisher = Platform + Publisher)1)는 그 꿈이 투영된 용어였다. 10여 년 전 “언론사는 기술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슬로건이 언론 산업 전체를 휘감기도 했었다. 곧 현실이 될 것만도 같았다.

플래티셔는 플랫폼 기업과의 관계 변화를 상징하는 개념이기도 했지만 언론사 수익모델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는 도전적인 비전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광고와 구독에만 의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새로운 방향 제시였다. 실리콘밸리의 신생 스타트업들이 100여 년 전통 신문사들의 수익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성장하는 걸 지켜봤기에 그 도전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 복스 미디어 등은 실리콘밸리화한 디지털 언론사의 1세대 모델이었다. 그들은 우수한 기술 인재를 채용하고, 콘텐츠 발행과 관련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했다. 뉴스룸 인력만큼 기술 인재를 대규모로 유지했고, 이를 통해 디지털 분야의 새로운 수익모델도 개척해 나갔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판매라는 언론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 수익원을 발굴해냈다.

발군은 복스 미디어였다. 복스 미디어가 개발한 코러스(Chorus)라는 퍼블리싱 플랫폼은 전 세계 언론사들이 탐을 낼 정도였다. ‘마법의 시스템’2)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기사 작성, 독자 모니터링, 소셜미디어 배포 등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었고, 편의성도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복스 미디어는 2017년부터 시동을 걸더니 2018년 7월, 본격적으로 외부 언론사들에게 이 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3). 이는 SaaS(Software as a Service)라 불리는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모델이다. 곧 시카고 선 타임스와 같은 굵직한 지역 언론사들이 고객으로 합류했다.

수익 목표도 야심찼다. 월 수십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해 연간 1000억원 이상을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로 벌어들이겠다고 호언할 정도였다. 이미 수십 곳의 언론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소문도 돌았다. 뉴스 미디어 기업이 본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출한다는 건 누가 봐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이 당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로 전 세계를 휘젓던 전통 신문사가 있었다. 바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인수했던 워싱턴포스트다. 워싱턴포스트는 인수 이전부터 자체 개발한 CMS(콘텐츠 관리 도구)를 2017년부터 알음알음 외부 언론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아크(Arc)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한 이 소프트웨어의 고객 언론사는 전 세계 30곳을 넘어섰다. AWS(아마존의 클라우드 플랫폼)와 결합된 형태로 제공되는 아크는 ‘퍼블리싱’, ‘디지털 광고’, ‘디지털 구독’의 3개 기술 영역을 연결하고 통합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당시 프레드 라이언 발행인은 “우리는 아크를 실행 가능한 사업으로 봐왔지만, 지금은 번창하는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라며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4).

실리콘밸리의 젊은 기업들이 주도하던 소프트웨어 판매 산업에 언론사들이 뛰어들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뉴스 미디어는 더 이상 사양 산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두 언론사가 이를 직접 입증해 보이기까지 했고, 구글, 페이스북과 직접 경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희망을 품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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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업이 달랐던 언론사들에게 소프트웨어 판매는 너무 버거운 과제였을까. 지난해 12월부터 암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수년간 지속해 왔던 아크의 라이선스 판매 사업을 워싱턴포스트가 분리 매각할 수도 있다는 뉴스5)가 갑작스레 터져 나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복스 미디어가 코러스 기술의 라이선스 판매를 중단한다는 보도도 등장했다6). 수천억 원대 수익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던 언론사들의 미래 비즈니스가 2022년을 기점으로 갑작스러운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비즈니스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B2B)에서 뉴스 산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7). 판매와 관리 기간이 길어 단기 수익창출에 익숙한 언론사들에게는 낯선 사업일 수밖에 없다. 인력 구성과 구조, 업무 문화도 뉴스룸과는 판이하다. 특히 CMS는 언론사들의 규모와 지역에 따라 요구사항과 맞춤화 요소가 과도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수익원으로 삼기 위해서는 DNA가 전혀 다른 조직 설계와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성공할 수만 있다면, 안정적이고 큰 규모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빅테크가 장악하고 있는 광고 시장의 불안정성을 완화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고, 구독과 광고, 기타 이벤트 수익으로 좁혀진 언론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전 세계 언론사 리더들이 이들 두 언론사의 성공을 음으로 양으로 염원했던 적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와 복스 미디어의 소프트웨어 수익 사업의 부침과 포기는 디지털 시대에 언론사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액시오스의 ‘액시오스 HQ8), 미닛 미디어의 ‘볼텍스 비디오’9) 등은 도드라지지는 않아도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낙담할 단계는 아닌 셈이다.

패스트컴퍼니가 “이제 워싱턴포스트는 소프트웨어 회사다”라고 상찬을 한 지 약 5년이 지났다10). 그러나 지금은 소프트웨어 회사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에서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던 제프 베조스는 전통 미디어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고, 이 수익원의 산파 역할을 했던 CIO는 올해 회사를 떠났다. 실리콘밸리의 피를 이식해 소프트웨어 회사로 진화하려 했던 언론사들의 꿈이 이대로 끝나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나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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