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부정부패의 말로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한국도 예전에는 부정부패가 심했던 나라라지만, 지구 반대편에는 여전히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가 많습니다. 사회 전반이 뇌물로 움직이거나, 중간에서 금품을 가로채기 하는 수법도 성행합니다. 20년 넘게 취재하면서 각종 ‘뇌물 사회’를 많이 봐왔지만, 제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나라는 바로 아프가니스탄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는 한창 건설 중인 국방부 청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및 군인과 경찰이 자국의 치안을 스스로 유지할 능력을 갖췄다’는 명분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엄청난 규모의 국방부 건물을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첨단 지하벙커, 신식 엘리베이터와 아프간에서 가장 큰 강당 등이 들어선 이 건물이 완성되면, 아프가니스탄의 랜드마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2009년 화려한 착공식과 함께 시작된 공사는, 2013년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4년 동안 건물 건설에 투입된 비용은 무려 1억 700만 달러(우리 돈으로는 약 2,000억 원 정도)나 되었는데, 모두 미국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이 비용은 당초 예상 예산의 2배입니다. 심지어 이미 2배의 비용을 쓰고도 공사가 안 끝나서, 현지 연합군은 당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에게 2천400만 달러의 추가 예산을 요청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기절할 노릇입니다. 공사기간이 4년이나 지났는데 건물은 절반도 채 안 지어졌던 것입니다. 거기에 공사비가 2배 들어간 것도 모자라 추가 예산 요청이라니.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심정으로 긴축을 하고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에 건물 하나 짓는데 이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입니다. 왜 아프간 건물 공사가 이렇게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되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사를 한다는 것은 보통의 건설공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사건건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공사 진행이 안 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도와주기 위해 건물을 짓는 것인데도 뇌물을 줘야하는 현실이 답답할 노릇입니다. 뇌물을 주지 않으니 공기가 마냥 늘어집니다. 완공이 느려질수록 뇌물을 받아낼 건수가 많아지니, 아프간 관리들은 가능하면 공사를 지연시키는 것이 좋은 것이니까요. 국방부 건물이 마냥 뇌물이 나오는 화수분이 된 것입니다.
국방부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 자재를 어렵게 공수해주어도 자재의 반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중간에 업자들이 빼돌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부 관리도 합세해 ‘자재 빼내기’를 합니다. 국방부 건물에 깔릴 대리석의 대부분이 아프간 관리들 집 바닥에 깔린 지 오래랍니다.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국방부 건물이 시멘트로 건조되어 구조물이 되어갈 때쯤 갑자기 세면기를 실은 트럭이 공사 현장에 도착합니다. 그 세면기는 아주 고급 제품입니다. 건물 공사 절차상 마감재가 완성되어야 들어올 수 있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도착합니다. 인부들은 트럭에서 세면기를 내려 시멘트가 채 마르지도 않은 건물로 옮깁니다. 기둥에 대충 기대어 묶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렇게 트럭 한 대 분량의 세면기가 건물 안에 놓이면, 트럭은 떠납니다. 잠시 후 다른 트럭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아까 건물 안에 들여 놓았던 세면기를 트럭에 다시 싣고 떠납니다. 그렇게 모든 세면기가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현지 연합군과 미군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입니다. 수사를 한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고, 국방부 건물 건설 현장에서 경비를 선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미국 의회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내놓아도 이 건물이 절대 지어질수가 없습니다. 본국에서는 건물 하나 짓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느냐고 난리입니다. 현지 연합군과 미군은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미칠 노릇입니다. 공사는 백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아프간에 근무하는 연합군 인사들은 "건물만 봐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빨리 아프간 뜨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러니 미국이 아프간 정부를 믿을 수가 있었을까요? 자구책 끝에 어쩔 수 없이 탈레반에게 권력을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뇌물에 관한 한 세계최고의 수법을 자랑했습니다. 제가 봐도 뇌물의 ‘본좌’였습니다. 결국 작년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며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아프간 부정부패의 상징인 국방부 건물은 대충 얼기설기 지어지긴 했지만, 건물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며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아프간 정부는 엄청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위해 전 세계가 갹출해 주었던 그 돈은 다 어디로 가고, 기아가 웬 말입니까. 부패한 관료들은 그 돈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가 호화롭게 살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이번 겨울이 아주 혹독하다고 합니다. 마음 아픈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새가슴 김피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