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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코디네이터와 밀당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1

방송가에서 흔히 쓰는 ‘코디’라는 말은 코디네이터의 줄임말입니다. 해외 취재나 촬영 시 통역과 섭외를 현지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말하는데요. 취재할 때 이 코디의 능력에 따라 취재의 성패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코디는 돈을 주고 고용한 것이니 당연히 ‘나의 편’일 것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전혀 아닙니다. 20년 넘게 만난 수많은 코디들 중에는 제 물건이나 촬영 장비를 훔쳐가기도 하고 위험지역에서 저를 납치하려는 무리들에게 팔아넘기려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코디를 가족 같은 끈끈한 사이로 만들어 그들의 마음이 내 편이 되도록 하는데 많은 힘을 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은 전쟁과 내전이라는 특수 상황에 처한 마음 약한 인간이기에 누군가 돈을 가지고 유혹하면 언제든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이나 위험지역에서 취재진의 신변이 위험해지는 경우입니다. 취재진 납치 사건이 일어나면 그들과 일했던 코디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코디는 취재진의 동선과 스케쥴을 알고 있으므로 납치범들에게 미리 정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게 납치에 가담하고 거짓말로 꾀어 위험한 장소로 몰고 갑니다. 제가 아는 외신기자들 여럿이 이렇게 당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던 한 미국 기자는 시리아에서 납치를 당한 끝에 참수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그를 데리고 시리아 내부로 들어갔던 코디는 저하고도 같이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저에게도 연락을 해서 IS(이슬람 국가)의 수장 알 바그다디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아마 세계적인 특종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달 넘게 끈질기게 연락이 왔었지만 저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현지 상황이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인데요. 시리아 내부의 안전 상태를 여러 경로로 알아보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코디가 문제였습니다. 저와 10년 넘게 일한데다 치과 의사 출신으로 영어도 유창했습니다. 착하고 똑똑한 그는 제 시리아 취재에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저는 이 친구에게 마음을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그가 외신 기자들을 속여 시리아로 데리고 와서 납치하는데 가담하고 돈을 챙긴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와 시리아 국경을 넘어간 기자들이 다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 외신기자들이 멍청해서 그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그 코디가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기에 믿고 신뢰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을 망가지게 하고 먹고 살기 힘든 그는 납치를 도와 이득을 취하며 살아가야 했을 겁니다.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제3세계에서 취재하다보면 코디가 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은 내 안에 있지만 취재는 해야 하니 코디를 잘 관리해서 위험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다른 코디를 찾아도 얼굴과 이름만 다르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들 돈에 관한 일이라면 돌변합니다. 이들을 그나마 잘 관리해서 위험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방법들입니다.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2

첫째, 일단 코디가 어느 가문 출신인지 파악해 그 가문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은 부족장이 최고 권한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속한 가문의 부족장을 만나 눈도장을 찍습니다. ‘내가 너의 부족장을 알고 있으니 허튼짓 하지 마라’는 메시지입니다.

둘째, 반드시 엄청 좋은 선물을 들고 정기적으로 코디 집을 방문한다. 코디의 가족들, 그러니까 부인이나 부모 등등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허튼짓 하지 말라는 뜻이죠.

셋째, 지역 관할 경찰서에서 가장 높은 분을 만나 코디와 나를 소개한다. 여차하면 경찰도 내편이니 딴 생각 하지 말라는 겁니다.

넷째, 코디가 믿는 종교계 높은 성직자를 만나 역시 나와 그를 소개한다. 당신이 믿는 신이 천벌을 내릴 수 있고 명망 있는 성직자도 제 편이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죠.

이렇게 코디와 사회적으로 엮인 관계망을 샅샅이 알아내 침투합니다. 일종의 보험인 셈이죠. 물론 이 방법들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이런 방법들은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코디와 밀당을 해야 제가 안전할 수 있으니까요. 외국, 그것도 아주 낯선 이국에서 그나마 저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경계해야하는 일, 이것 참 피곤한 일입니다. 취재보다 이게 더 일이라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제가 코디를 너무 경계해서인지 아직까지 큰 불상사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사소한 작당모의와 절도는 늘 있는 일입니다. 납치나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너무 끈끈한 사이가 되어 어느 나라든 저의 관리된 코디들은 가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20여 년 세월을 보내며 전 세계 곳곳에 있는 그들과 저도 같이 늙어갑니다.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또 결혼을 합니다. 각종 경조사를 다 챙기고 그 나라에 방문할 때마다 그들이 사오라는 냄비, 프라이팬 혹은 부인의 화장품을 가방에 넣습니다. 훗날, 제가 일선에서 은퇴하는 날이 오면 저는 그들에게 고백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사실은 내가 당신들 안 믿고 밀당했다고 말이죠. 사실은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그 나라의 시국이 문제였으니까요. 세계 여러 나라에 20년 넘게 저와 가족처럼 얽혀있는 코디들. 그들은 새가슴 김피디 취재의 일등공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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