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영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한국의 크리스마스가 아이들과 연인들을 위한 날이라면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 모두를 위한 날이고 가족과 보내는 날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에게 줄 선물을 잔뜩 사들고 집으로, 즉 대가족에게로 돌아간다. 천하의 왕따가 아니라면 모임도 많다. 대략 11월 중순에 접어들면 크리스마스에 주고받을 선물을 마련하기 시작하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도 소비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온라인 매장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특별한 광고를 내놓는다. 이런 크리스마스 광고들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기분이 난다. 크리스마스 광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단연 ‘존 루이스(John Lewis)’의 광고다. 존 루이스는 영국의 백화점 체인이다. 고급 백화점의 이미지가 있어서 서민들은 선뜻 가게 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곳의 크리스마스 광고는 해마다 독특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올해는 어떤 내용의 광고가 등장할지 기대를 하도록 만든다. 광고에 등장하는 배경음악 역시 화제가 되고 등장하는 장난감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한다. 여러 관련 업계 사람들이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가 공개되는 아침, 올해의 광고는 어떤 내용인지를 챙겨보는 것이 당연한 일일 정도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이 백화점의 광고에는 선물로 주고받을 상품이랄 것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초보(The Beginner)’라는 제목의 올해 광고에는 중년의 아저씨가 등장한다. 이 중년남은 스케이트 보드를 막 배우기 시작한 참인 듯 매우 열심이다. 길에서도 타보고, 낮이고 밤이고 보드 연습이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눈치를 보면서 연습을 할 정도다. 각고의 노력을 하던 이 사내가 드디어 보드를 발로 차올려서 잡을 수 있게 되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백화점 광고라기보다는 ‘인간극장’의 압축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소린가, 아니면 중년의 위기 극복기인가 하며 보고 있노라면 광고의 말미에 드디어 이유가 등장한다. 이 남성과 그의 파트너로 보이는 여성은 가정위탁 양육자(포스터 케어러, foster carer)가 되려고 하는 참이다. 가정위탁(foster care)이란 어떤 사유에서든 원래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른 가정에 맡겨서 돌보도록 하는 제도다. 긴장한 부부가 현관문을 열자 역시 잔뜩 긴장한 십대 초반의 소녀가 서 있다. 소녀가 소중히 안고 있는 것은 스케이트 보드다. 소녀가 남자의 뒤로 보이는 스케이트 보드를 알아채고 남자가 다친 팔을 슬쩍 보여주는 순간이 이 광고의 하이라이트다. 이 초보 위탁 양육자는 이 소녀와 연결점을 찾기 위해 그리 노력한 것이다. 배경음악의 제목은 ‘모든 작은 일들(All the Small things)’이다.
실제로 보면 꽤나 뭉클하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호평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광고인 셈이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마땅한 크리스마스에 무슨 연유인지 가족과 지내지 못하게 되어 낯선 위탁 가정에 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이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의 좌파 신문인 가디언에서는 이 광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기사(John Lewis Christmas advert: the most unapologetically depressing thing in human history)를 내놓았다. 이 기사는 올해의 존 루이스 크리스마스 광고의 메시지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팔을 부러뜨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위탁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리고 있는데, 영국 신문의 기사가 한국에 비해 꽤나 신랄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나 심하게 삐딱하다.
가디언의 이런 태도는 대기업의 광고가 제공하는 감상성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듯하다. 사실 위 광고가 끌어내고자 하는 ‘크리스마스 온정’은 따뜻하지만 단발성이고 체계적 제도라기보다 개인의 선의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 광고는 영국에서 십만 팔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돌봄이 필요하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돌봄이 사회적인 온정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관심은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이 신문은 좀 덜 비아냥거리는 다른 기사를 통해, 존 루이스가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것, 이 회사가 가정위탁을 거친 청년들에게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점 등에 대하여 일단 칭찬을 한 후, 다만 자선에 의지하여 이런 일들을 해결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회 서비스를 확충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꼬집고 있다.
한편,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반론으로, 팬데믹과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비 인상을 겪으면서 위탁 가정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존 루이스가 크리스마스 광고를 통해 가정위탁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 것은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다는 투고가 가디언의 ‘편지’란에 실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존 루이스에서 크리스마스 한정판 곰인형 및 스케이트 보드 등 광고에 나타난 물건을 사는 경우 약 사분의 일 정도가 아이들을 위한 자선기금으로 기부된다고 한다. 그러니 광고는 광고인 셈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재밌는 지점은 존 루이스의 회원 카드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은 이 광고를 다른 사람들보다 두 시간 먼저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 미리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