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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남긴 것
-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재난보도 준칙
- 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 밤, 믿기 어려운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들이 소셜 미디어와 동영상 플랫폼, 커뮤니티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는데요. 이후에는 사고 발생 원인을 두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거나 고인과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로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일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속보 전하며 모자이크 처리 없는 사진 노출,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 자정 나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 소식은 실시간 언론 속보로 전해졌는데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됐습니다. 먼저 사고 발생 당일, 몇몇 언론사는 커뮤니티, 소셜 미디어 등에 올라 온 현장사진과 영상을 캡처해 모자이크 처리 없이 기사에 사용했다가 고인에 대한 인격권 침해 우려 등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또 장례식장 앞에서 유가족에게 사망자에 대한 사연을 들으려는 기자들의 취재경쟁이 벌어지자 경찰서에서 주의를 촉구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초기 지적됐던 일부 자극적인 보도들은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련한 재난보도준칙 준수를 당부하며 자정에 나서자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했는데요. 언론노조 역시 “참사 현장을 취재할 때엔 말과 움직임에 더욱 마음을 써야 한다. 특히 피해자와 가족에게 아픔을 더하는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무차별적 인용, 확인 없는 추측성 보도는 참사 현장에 발붙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언론사들은 현장 영상의 불필요한 반복 사용 및 유족에 대한 과도한 접근 자제 등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동영상 플랫폼 통해 참혹 장면 전파 계속돼
보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 유튜브, 틱톡 등 영상 플랫폼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이용량이 동시에 급증했다고 하는데요. 큰 사고가 발생했으니 미디어 이용량이 늘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현상이 사건 발생 당시의 참혹한 장면들이 전파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유튜브 등 주요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체 가이드라인 공지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참사 관련 영상이나 사진 유포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서도 온라인에 게시된 현장 사진과 영상 가운데 개인 신상 노출이 우려되는 정보들을 차단하거나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문제되는 영상을 일시에 제거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존재합니다. 특히 ‘릴스’나 ‘쇼츠’, ‘틱톡’과 같이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숏폼 플랫폼 이용이 늘어나면서 이용자들의 노력과 협조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난보도 준칙, 언론뿐만 아닌 우리 모두의 기준으로 삼아야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 재난 발생 시 적절한 가이드라인 없이 이뤄지는 언론의 속보 경쟁이 사고 당사자는 물론, 취재 현장에 있던 기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이후 언론계는 자연재해와 대형 사건·사고 발생 시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기 위한 ‘재난보도 준칙’을 마련했는데요.
2014년 9월 16일, 한국신문협회 등 5개 언론단체가 공동으로 제정한 ‘재난보도 준칙’에는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무관한 흥미위주의 보도를 자제하고, 취재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재난보도 준칙이 제정된 이후에도 가이드라인이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는 사례들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송종현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인터넷 포털과 SNS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뉴스 유통과 소비 구조가 언론사 내적 요인과 맞물리면서 문제가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는데요. 즉, 언론사가 확인된 사실을 보도하기 이전에 SNS 등을 통해 개인들이 목격한 내용이 여과 없이 전달되면서 언론사의 보도 윤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꾸준히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만큼, 언론보도 등으로 반복되는 인격권 침해 문제에 대한 대처도 필요해 보이는데요.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언론중재위원회 광주중재부 위원)는 칼럼에서 ‘보도윤리를 지키는 작업은 언론사나 플랫폼만이 아니라 게시물을 생산하고, 찾아보고, 공유하고, 전송하는 모든 SNS 이용자가 동일하게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재난보도 준칙은 취재 현장에 있는 언론인뿐만 아니라 초연결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