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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media of the world

뉴스 형식 파괴와 저널리즘 신뢰 회복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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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이 직면한 ‘신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럿 존재한다. 팩트체크는 기본이고, 솔루션 저널리즘 도입, 저널리즘 관행 수정, 저널리즘 우선순위의 재정립까지 다양한 접근법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단기간에 풀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도 드물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을 언급할 때 소홀하게 다뤄진 분야도 있다. 뉴스의 형식 변화다. 특히 텍스트 기반 뉴스 구조와 포맷의 혁신을 신뢰 문제와 연결해 생각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객관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사적으로 탁월한 성능을 입증했던 역피라미드 구조는 논외의 대상이었다. 뉴스의 형식이 저널리즘 신뢰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상상은 깊게 탐구되지도 고려되지도 않은 의제이자 명제였다. 뉴스 스타트업 세마포(Semafor)의 도전은 이런 맥락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 벤 스미스와 블룸버그 CEO 출신인 저스틴 스미스, 그리고 블룸버그 편집인을 역임한 지나 추아가 합심해 지난 10월 창간한 세마포는 ‘더 정직하게’라는 모토에 걸맞은 새로운 뉴스 형식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른바 ‘세마폼(Semaform)’이다. 이 뉴스 형식을 설계한 지나 추아는 세마폼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뉴스 형식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을, 그 팩트에 대한 기자의 분석과 분리하고, 보다 다양하고 글로벌한 관점을 제공하며, 해당 주제에 대한 다른 언론사의 고품질 저널리즘을 공유합니다.”

세마포의 창업자들은 기존 뉴스 형식을 해체한 뒤 5개의 섹터로 재구성해 세마폼으로 구조화1) 했다. 5개의 형식은 1) 뉴스, 2) 기자의 관점, 3) 반론의 여지, 4) 또 다른 관점들, 5) 주목할 만한 보도로 하나의 뉴스 페이지 안에서 이를 구분 짓는다. 사실과 의견의 뒤섞임, 반론과 또 다른 관점들의 뒤엉킴을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속성을 활용해 무 자르듯 구획한다. 투명성의 가치가 형식의 가치로 전환된 뉴스의 새로운 꼴인 셈이다.

세마폼이라는 뉴스 형식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명확하다. 사실과 분석을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의 고충, 단일 관점만을 제시하려는 저널리즘의 관성, 개별 뉴스 페이지 소비가 유발한 섣부른 편향과 오해다. 세마포는 이러한 문제들을 뉴스 형식의 혁신적 재구성을 통해 풀어가고자 했다. 이것이 곧 저널리즘이 신뢰로 나아가는 새로운 경로라고 봤다. 액시오스(Axios)가 ‘영리한 간결성’이라는 뉴스 구조로 디지털 뉴스 읽기의 효율화를 시도했다면, 세마포는 저널리즘 신뢰 회복과 뉴스 소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당찬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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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창간된 뉴스 스타트업 그리드 뉴스(Grid News)의 ‘360도 렌즈’ 포맷도 주목할 만한 시도다. 그리드는 하나의 사안을 전문성을 갖춘 기자들이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는 뉴스 포맷을 선보인 바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수용 급증’ 기사2) 를 1) 글로벌 공급 렌즈, 2) 중국의 렌즈, 3) 미국 정책의 렌즈, 4) 기술의 렌즈로 4분할해 하나의 기사에 담아낸다. 단일 관점만으로는 놓칠 수 있는 다각적인 분석을 360도 렌즈라는 이름 아래에 서로 다른 전문 기자들이 협업해 기사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저널리즘의 신뢰 문제를 형식 혁신의 접근법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맥락에서 세마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텍스트 뉴스의 형식과 수용자 이해 간의 관계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심층적으로 연구돼 온 주제 중 하나다. 특히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디지털 뉴스 포맷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누적돼 왔다. 일례로, 쿨카니 등(Kulkarni et al, 2022)의 연구를 보면, 동일한 뉴스가 디지털 지면에서 어떤 형식을 띠느냐에 따라 수용자들의 이해도와 감성적 수용도에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실증되기도 했다. 이해도를 높이는 포맷과 관여도를 제고하는 형식이 디지털에서는 판이하다는 점도 입증해 냈다. 그만큼 뉴스 포맷의 혁신이 뉴스 소비와 이해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영미권에서 등장하는 다수의 뉴스 스타트업들은 텍스트 기반 뉴스 구조의 파괴를 혁신의 무기로 내세우는 경우가 빈번하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액시오스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혁신 문화는 디지털에 최적화한 뉴스의 새로운 문법을 탐색하려는 시도다. 신문-전신 시대에 최적화한 역피라미드 뉴스 구조가 디지털-모바일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각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때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 기사와 같은 구조가 디지털스토리텔링의 새로운 형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기대만큼 확산되지는 못했다. 중소 규모 언론사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높은 생산 비용이 발목을 잡아서다.

저널리즘 신뢰 회복의 실마리는 오로지 저널리즘의 원칙 지키기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100년을 넘긴 뉴스 형식의 전복과 파괴, 그 안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의 싹을 찾아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애초부터 봉쇄하고 있는 국내 언론사의 편집국 문화는 이 같은 맥락에서 다시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저널리즘이 당면한 여러 문제의 우회적 해결방식으로 낡은 뉴스 구조의 혁신, 그 도전에 나서보는 것도 우리 앞에 놓인 가치 있는 선택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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