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무서운 총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달리는 차안에서 총도 쏘고 총알까지 잘도 피해 다닙니다. 영화 주인공이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박진감 넘치게 ‘탕’ 쏘며 운전도 기가 막히게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부의 칸다하르라는 도시에서 카불로 오는 길에 진짜 작은 메아리처럼 총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뭐지?”하면서 밖을 보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차 안에 있던 현지인 통역이 저에게 “안돼! 창문 닫아!”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해 시키는 대로 창문을 닫았고 운전기사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어느 작은 도시에서 차를 멈췄습니다. 그리고 다들 내려서 웅성웅성하길래 저도 내려서 보니 세상에……. 현지인이 차 안에서 총알을 들고 나옵니다. “이거 어디서 온 거지?”라고 물으니 총알이 차 옆을 뚫고 들어와 운전기사 의자에 박힌 거랍니다. 그러니까 총알이 차를 다 뚫고 들어 온 것입니다. ‘아, 총알은 차를 뚫고 들어오는 물건이구나’하는 현실감이 몰려 왔습니다. 갑자기 다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납니다. 영화를 보면 총알이 차에서 튕겨져 나가던데 실제는 안 그런가 봅니다. 생각해보니 방탄차가 아니고선 총알이 차 안으로 들어오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 후 저는 총소리가 들리면 광속으로 차 바닥에 엎드립니다. 차 바닥에 납작 붙어 넙치가 됩니다. 상황이 끝나고 현지인 스텝들이 저를 한참 만에 발견합니다. 제가 얼마나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으면 그러겠습니까.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한번 택시를 타고 가다가 굉음을 듣고는 차 바닥에 엎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저를 보고 뭐하냐고 물어 무안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총격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명한 마약조직인 세타스를 취재하는 중이었습니다. 바로 앞차가 갑자기 창문을 내리더니 총구가 슥 나타납니다. 제가 타고 있는 바로 옆 차선 차와 앞차가 서로 총을 쏘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와 현지 스태프는 공포의 도가니였습니다. 우리 운전기사는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이리저리 차선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본 그들의 모습은 황당했습니다. 일단 총을 쏘는 사람들이 엄청 어설픕니다. 영화처럼 달리는 차에서 멋지게 총을 쏘는 게 아닙니다. 다들 총을 잘 못 쏩니다. 창문을 열고 총을 꺼내다가 바람에 눈도 제대로 못 떠서 대충 아무 곳이나 막 쏘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처럼 선글라스 쓰고는 절대로 총 못 쏠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으니 잘 보이지도 않고 바람은 너무 세니까요. 이들이 총을 제대로 쏘려면 갓길에라도 주차하고 총격전을 벌여야 할 듯했습니다. 이렇게 달리며 총격전을 벌이다간 아무 상관도 없는 옆에 있던 다른 차가 빗맞아 죽을 듯 했습니다. 그러니까 총을 쏘는 당사자들보다 구경하는 우리가 더 위험할 판입니다. 그래서 전속력으로 그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총격전은 구경하지 말고 무조건 삼십육계 도망이 제일 안전합니다.
제가 본 총의 용도는 무조건 사람을 죽이는 것에 사용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멋있거나 게임처럼 재미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총소리가 나는 순간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총소리가 무섭습니다. 홍콩에서 저는 홍콩 경찰이 쏜 총에 고등학생이 맞는걸 보았습니다. 그 총소리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학생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저는 한국말로 “안 돼. 애들 쏘지마.”라고 외치면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발이 안 떨어졌습니다.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임에도 홍콩 한복판에서 총을 쏜다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어디선가 들리는 ‘탕’하는 총소리를 또 듣고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습니다. 밖을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호텔 프런트에 전화해서 총소리를 못 들었냐고 물으니 못 들었답니다. 그래서 내가 꿈을 꾸었나하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또 총소리를 듣고 깼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열 번도 더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병원에 가보니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환청을 들은 것이랍니다. 총소리가 귀에 묻어 온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 끼쳤습니다.
저는 이렇게나 총을 무서워합니다. 예전에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취재할 때의 일입니다. 시장 한가운데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저와 현지 스텝, 그리고 경호원 여러 명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 시장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 제가 묵는 숙소가 있었는데 저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달려서 숙소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경호원들이 저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호텔 로비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저의 경호원들이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보다 빨리 도망가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당신을 보호해야 하는데요” 아, 얼마나 겁이 났으면 제가 그렇게 빨리 달렸겠습니까. 이어 경호원들이 또 말합니다. “또 이러면 그 때는 한국에 다 불어버립니다. 김영미가 얼마나 겁이 많은지 우리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용감하게 분쟁지역을 취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총소리에 혼비백산하는 겁 많은 새가슴 김피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