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권력에 줄서기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외국에서 취재하며 가장 필요한 건 돈과 시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고 시간이 있어도 못 따라 오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인맥 많은 취재진입니다. 특히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가면 인맥은 더 빛을 발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 누구누구 아는 사람이야”, “나 백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다 통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가는 큰일 나겠지만 해외에서 취재하려면 인맥 쌓기는 필수입니다. 그 나라의 높은 분과 친분만 쌓으면 취재를 쉽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취재하고 밤에는 저녁 식사 자리나 술자리로 뛰어야 합니다. 그렇게 23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쌓은 인맥이 저에게는 부동산보다 더 가치 있는 재산이 되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라크 전쟁이 나기 전에 사담 후세인 정부 관료들은 거의 매일 저녁 파티를 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인데 매일 호화로운 파티가 이어졌던 것이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 정부 관료들은 부패했으며 무책임했었습니다. 그때 알았던 ‘칼리드’라는 정부의 높은 사람은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당시 이라크에서는 소지가 불법이었던 위성전화를 가지고 있다가 끌려갔을 때도 칼리드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전화 때문에 끌려갔는데 전화로 해결되었다고 나에게 웃으며 말하던 그 사람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습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도 물밑에서 건재하게 살아남아 나중에 이슬람 국가(IS)의 높은 자리에 올랐고 시리아 취재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맥은 취재하는 저에게 너무도 소중한 자산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취재도 탈레반부터 아프간 정부까지 각계각층에서 그동안 만나고 쌓아온 인맥들이 바탕이 됩니다. 이 때 어느 줄을 잡느냐에 따라 취재의 퀄리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최고 권력자의 줄을 잡으려 노력하죠.
문제는 권력 구도가 바뀔 때마다 위기가 찾아온다는 겁니다.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면 그 시련이 제게도 닥칩니다. 수단에서 독립한 나라 남수단에서의 일입니다. 수단이라는 나라는 내전이 극심했습니다. 그 유명한 ‘다이푸르 내전’으로 국가 전체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죠. 수단 남쪽은 기독교, 수단 북쪽은 이슬람교다 보니 ‘수단’이라는 국가 안에서 두 종교가 맨날 지지고 볶고 싸웠습니다. 말 그대로 종교전쟁 양상이었죠.
국제사회는 그 둘을 차라리 분리, 독립시켜 더 이상 싸우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2011년 남수단이 분리 독립하는 날, 이제 수단에서 더 이상 싸움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남수단 안에서 또 다른 두 세력이 생겨납니다. 대통령파와 부통령파. 이 둘이 또 싸웁니다. 둘은 종족이 서로 다릅니다. 이번엔 종족 전쟁이랍니다. 저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어떻게든 싸울 구실을 만드는구나’ 싶었습니다. 종교나 종족, 둘 다 전쟁을 하려고 만든 이유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는 건 뭘까요. 권력입니다. 권력을 두고 다투다가 완장만 차면 또 다시 뭔가 싸울 구실을 만들어 그 집단을 완전히 장악하려 합니다. 사실 남수단 대통령과 부통령은 독립 이전에는 서로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말하자면 함께 독립운동하던 막역한 친구였죠. 저는 이들 편에서 남수단으로 독립할 때까지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저에게 이분들은 황금 인맥이었습니다. 그런대 이 둘이 종족 문제로 돌아서자 저는 줄을 다시 서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대통령 편에 줄을 서도 부통령 줄에 서도 저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독립을 한 후 이들은 서로 적이 되어 또 다시 서로 권력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양쪽에 다 줄을 댈 수 있는 묘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런 상황은 비단 남수단 뿐만 아닙니다. 얼마 전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나라의 알파 콩데 대통령과 어렵게 좋은 인맥을 만들어 놨는데 이 연줄이 쿠데타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급하게 기니에 연락해서 쿠데타 주역이 누군지 파악해야 했습니다. 기니의 군인이라면 3개파가 예상됩니다. 미국에 가서 훈련을 받은 미국파, 중국 정부로부터 군사 교육을 받은 중국파, 그리고 프랑스군에게 위탁 교육을 받은 프랑스파입니다. 알아보니 쿠데타의 주체는 프랑스파였습니다. 저는 재빨리 줄을 서려고 프랑스파 관리들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기니의 황금인맥이 다시 보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이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 안심은 이릅니다.
이런 나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보니 저는 한국에 살면서도 제3지대에 사는 기분입니다. 도심의 카페에서 지인을 만나다가도 어느 나라 권력이 바뀌는 사건이 벌어지면 저는 비상입니다. 나중에 진행할 취재에 거대한 문제가 생기니까요. 이 줄이 날아가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줄을 만들어 놓아야 안심입니다. 이렇게 줄과 백에 목숨 거는 일은 너무도 피곤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만큼은 이렇게 피곤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백이 필요 없는 한국처럼 저는 민주국가의 국민으로만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