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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한류와 반지하

  •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1

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영국박물관의 영어 이름은 그저 ‘The British Museum’이다. 그러니까 ‘크다’는 뜻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대영박물관이라고 습관적으로 부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방대하고 유명한 전시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는 물론 영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사실 전시품들 중 먼저 생각나는 것은 로제타석이나 이집트의 미라와 같은 물건들이다. 즉, 영국이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운영하면서 ‘대영제국’으로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 모아들인 다른 나라의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영국인으로부터 진정 영국적인 것들을 보고 싶다면 영국박물관이 아니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가보라는 권유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가봤더니 거기에도 외국에서 수집한 물건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래도 영국인들이 느끼기에는 영국박물관에 비해 보다 영국적인 문물 내지 취향을 보여준다는 소리인가 싶었다. 하기는 전시품을 수집했던 당시 영국인들의 시선이 영국박물관에서 느껴지는 것 보다는 덜 약탈자적인 듯도 하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건립 당시 영국의 군주였던 빅토리아와 그의 남편인 앨버트공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여왕으로는 여섯 번째 왕인 빅토리아는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고조모다. 재밌다고도 할 수 있는 지점은 빅토리아 여왕이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고 필립공의 고조모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친가 쪽, 고 필립 공에게는 외가 쪽 고조모다. 영국 뿐 아니라 유럽의 왕족 및 귀족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친인척 관계로 얽혀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빅토리아 여왕이 군림하던 19세기 중반은 영국이 가장 융성하던 시기였다. 1851년 런던에서는 앨버트공의 주도하에 제1회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of Industry of All Nations)가 성공리에 개최되었다. 이 성과를 기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해에 ‘생산품 박물관(Museum of Manufactures)’을 건립했는데, 1854년 박물관이 있는 동네의 이름을 따서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899년 대규모 증축에 들어갔다. 이 때 빅토리아 여왕이 참석해 시금석을 놓는 행사를 가졌는데, 이 행사 도중 현재의 이름이 발표되었다. 부부는 생전에 매우 가까웠고, 빅토리아 여왕은 1861년 이른 나이에 죽은 남편을 매우 그리워했다고 한다. 다만 이제는 그 이름을 다 부르기보다는 줄여서 V&A라고 흔히 부른다.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2

9월에, 영국인들이 사랑하고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 박물관에서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다룬 특별전이 열린다. V&A의 경우 내셔널 갤러리나 영국 박물관에 비해 응용 미술이나 산업 미술에 주력해 왔고, 최신 디자인이나 패션 경향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특별전 등을 개최해왔다. 대중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왔지만 이 정도 중량감의 박물관에서 전적으로 외국발(發) 대중문화, 즉 ‘한류’에 대한 특별전을 시도하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 제목도 간명하게 <한류! (Hallyu! The Korean Wave)>다. V&A는 홈페이지에서 이 전시를 ‘한류, 즉 코리안 웨이브의 형성 및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영화, 드라마, 음악, 팬덤, 뷰티, 패션 등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하며, 다채롭고 역동적인 한국 대중문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강남 스타일>이 난데없이 영국을 강타한 것이 2012년의 일이었다. 당시 어린아이들 생일파티부터 회사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파티에서 강남 스타일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말춤을 추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강남’이나 ‘오빠’의 의미를 묻는다거나 사상 최초로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달성했던 그 노래의 뮤직 비디오 장면들에 대한 질문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한번 스쳐가는 바람이었을 뿐 그로 인해 한국 내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열기가 사뭇 다르다. 런던 중심가에서는 보지 못하던 한국 음식점이 속속 생기고 있고, 심지어 영국 음식점에서도 ‘한국식’임을 주장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딘가 어색한 음식들이 등장했다. 상점들에서 케이팝(K-pop)이 울려 퍼지고, 거의 매주 케이팝 이벤트가 있다. <오징어 게임>이나 다른 한국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는 인사말도 흔히 들을 수 있다. 한국이 대중문화 전반에 있어서 가장 활발하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된 것은 틀림없다.

9월에 있을 V&A의 <한류> 전시에는 <기생충>의 반지하집 화장실이 재현된다고 한다. 이를 보도하면서 가디언은 ‘반지하’를 한국어 소리 그대로 ’banjiha’라고 적었다. 물론 ‘semi-basement apartment’라는 설명을 달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편 블룸버그나 BBC 등 많은 외신들은 이번 여름 서울의 대폭우로 인해 반지하방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망사고를 앞다투어 전하면서 반지하집을 ‘(영화) 기생충 스타일의 집’이라고 묘사했다. 예전과는 정도가 다른 관심이고 다른 방식의 묘사고 그렇다. 이에 대해 한국 사회는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발전할 것인가.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선 못지않게 그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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