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런던까지 찾아온 폭염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을 생각하면 안개가 자욱한 컴컴하고 우울한 날씨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적어도 런던에서 특히 낮에는 안개를 보기가 어렵다. 십여 년을 살면서 안개 자욱한 날을 겪은 건 한두 차례 정도나 있었던가 싶다. 비는 자주 오는 편이다. 전형적인 런던의 날씨는 하루에도 대여섯 차례 심하지 않은 비가 오락가락 하다가 바람도 불다가 해도 났다가 기타 등등 매우 변덕스럽다. 영국인들 스스로도 영국의 하루에는 사계절이 다 들어 있다고 표현한다. 전날의 날씨를 보고 그 다음날의 날씨를 짐작하는 건 무리다. 하루하루 다르기 때문이다. 날짜에 따라 어느 정도는 순서대로 계절이 진행해 가는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얼핏 듣기에 매우 날씨가 나쁘다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런던 등 영국 남부의 날씨는 상당히 살기 좋은 편이다. 서울보다 쾌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가을 및 겨울은 해가 일찍 지는 데다가 날이 흐리고 자주 비가 오니 상대적으로 날씨가 나쁜 계절이다. 하지만 한겨울이라고 해도 기온이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고 비도 세지 않게 오락가락한다. 그러니 영국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가을, 겨울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자 달린 겉옷을 주로 입는데, 비가 오면 모자를 쓸 뿐이다. 눅눅하고 으슬으슬한 가을 겨울이 이어지다가 바야흐로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신록이 무성해지면 봄이 왔나 보다 싶어진다. 봄부터 여름까지의 런던 날씨는 눈부시게 찬란한 날들이 이어진다. 비가 잘 오지 않아 마른 날이 많고 해가 매우 길다. 여름이라고 해봐야 섭씨 20도를 웃도는 정도고 그보다 더 기온이 높다 해도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에 있으면 덥지 않다.
말하자면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의 온도 차이가 이십여 도에 불과하고, 지나치게 춥거나 지나치게 더운 날이 많지 않다. 따라서 주택들 역시 단열이나 냉난방에 많이 주의를 기울여 지은 집이 그리 없다. 심지어 보일러가 없는 집도 있는데, 이 경우는 집안에서도 옷을 두텁게 입고 간단히 난로 등을 사용해 겨울을 난다. 에어컨이 있는 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더운 날이라는 것이 일 년에 몇 차례 없기 때문이다.
이러던 것이 몇 년 사이 누구나 느낄 수 있게 기후가 변해가고 있다. 빗줄기가 세져서 간혹 한국의 장맛비 비슷하게 마구 쏟아지기도 한다. 이런 비가 오랜 시간 내리면 주택가의 골목길들은 물에 잠기는데 영국의 하수 시설은 아주 오랫동안 살살 내리는 비를 감당하기 충분할 정도로만 유지되어 온 것이다. 갑자기 다량의 비가 오면 넘쳐버린다. 런던의 겨울에 눈을 보기란 매우 어려웠는데 눈도 제법 오게 되었다. 눈에 대한 대비책도 거의 없다시피 했으나 이렇게 앞으로 매해 눈이 오게 된다면 이에 대한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변화는 최근 몇 년간 여름이면 더워서 견디기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는 날들이 며칠간 지속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올해는 드디어 최고 온도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지난 7월 19일 영국 중부에서 최고 기온 40.3도를 찍었고, 런던의 여러 지역에서도 40도가 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이는 1659년 여름, 영국에서 공식적으로 기온 관측이 시작된 이래 363년 만의 최고치에 해당한다. 2019년 7월에 38.7도를 기록했던 영국 기온은 올해 사상 처음 40도를 넘어섰다. 언론은 연일 폭염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부 및 회사 등은 여행 자제나 재택근무를 권고했고, 학교는 급히 휴교를 했다. 공항이나 철도 역시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린 것은 영국만이 아니다. 프랑스나 스페인, 평시에는 좀 더 서늘한 독일에서도 40도를 넘은 곳이 많았다. 남서부 유럽에서는 천오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곳곳에서 산불이나 화재도 이어졌다. 더위라고는 모르던 북유럽 역시 30도가 넘는 기온을 기록했다.
영국 기상청은 애초 영국 기온이 40도를 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변화가 이런 극단적인 고온 현상을 가져왔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해 오존 오염이 가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오존 오염은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높은 온도와 만나면 심해진다고 한다. 그러니 그간 에어컨 없이 살던 이 모든 나라들에서 여력이 되는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이 싫다며 너도나도 에어컨을 장만하고 틀어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가뜩이나 에너지 소비 및 대기 오염이 가중시킨 전 지구적인 이상기후가 더 빨리 심각해지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기후 변화로 인해 날씨가 예전과는 달라졌다고들 말한다. 뚜렷한 사계절이라더니 이젠 봄, 가을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여름이면 지나치게 덥고 마치 동남아시아를 방불케하듯 거센 비가 순간적으로 지나가고 겨울에는 지나치게 춥다. 이런 날씨에서 냉난방을 자제하자고 하는 건 무리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 재난이 올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상하는 바다. 팬데믹보다도 더 그렇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냉·난방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적정온도를 유지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냉·난방기 청소를 하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