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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 이슈 톡톡

어느 기자의 고백과 시정권고 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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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모 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사망 사건 직후,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언급한 수많은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해당 사건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 기사가 화제에 올랐는데요.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마련한 ‘성폭력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참조해 피해자 신원 노출은 최소화하면서 사건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데 집중하며 기사를 써보았다고 합니다. 기사 한 줄마다 가이드라인에 언급된 유의사항을 독자들도 함께 짚어볼 수 있게 한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에 앞서 한 중앙일간지는 인터넷에 최초 송고된 기사의 선정적·성차별적 제목을 발견해 신속히 바로잡았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주요 법익 침해 예방 가이드라인, 시정권고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보도로 인해 발생한 분쟁을 조정·중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언론사를 상대로 조정을 신청하면 양당사자가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죠. 그런데 언론중재위원회가 언론보도의 개인적, 사회적 법익침해 여부를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해 개선을 권고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바로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 제도인데요.

‘시정권고’란 언론보도가 누군가의 명예,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마약, 범죄, 자살과 같은 사회 문제를 증폭시키지 않도록 예방 기능을 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기사에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어 2차, 3차 피해가 우려된다든지, 자살 방법이나 동기, 마약의 종류·용법·용량 등이 지나치게 상세히 언급돼 모방 위험이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하죠.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 심의기준’은 헌법, 형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여러 법률에서 공표를 금지하는 사안이나 자살, 마약, 범죄사건 등의 보도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않기 위해 언급하지 말아야 할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습니다. 기사의 내용이 개인이나 사회, 국가적 법익을 침해할 가능성은 없는지 사전점검해보는 바로미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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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상반기 사생활 침해 관련 심의기준 위반 크게 늘어

언론중재위원회가 시정권고 심의를 상시적으로 하는 매체는 2022년 7월 1일 현재 기준 2,682개입니다. 위원회는 1) 법익침해 가능성이 높은 시사성(정치·경제·사회 등) 기사가 전체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중, 2) 법익침해 발생 시 예상되는 피해 범위와 정도, 3) 정기적 발행 여부 및 기사 제공 빈도, 4) 매체 구독 및 접근 용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니터링 매체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2022년 상반기 시정권고 현황을 살펴보면,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위반한 사례는 모두 670건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초상권이나 성명권, 통신비밀 등 사생활 침해 관련 심의기준 위반사례가 57.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기사와 광고의 구분이 모호해서 독자들이 혼동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15.2%, 법률상 금지하고 있는 신고자 등의 신원을 공표한 사례가 7.8%순이었는데요.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유명 연예인의 가정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미성년 자녀의 초상을 노출하거나, 범죄사건 피의자들이 주고받은 편지처럼 내밀하거나 사적인 영역에 해당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는 등 사생활 침해 유형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인터넷매체 70.7%, 시정권고 취지 수용해 기사 수정, 삭제 등 사후조치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는 이미 보도된 기사를 사후적으로 심의해 ‘향후 유사한 보도를 할 때 이런 점들을 주의해 달라’는 당부의 메시지에 해당합니다. 법률적으로 언론사에 이행을 강제하는 조치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사에서는 자율적으로 권고사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요. 위원회는 6개월마다 언론사가 시정권고의 내용을 받아본 후 보도에서 법익 침해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부분을 수정 또는 삭제하는 등의 사후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시정권고 결정을 받은 인터넷매체 가운데 70.7%가 해당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만큼 많은 언론사가 시정권고의 취지에 공감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겠죠?

앞서 ‘모 대학 성폭력·사망 사건’을 다시 썼던 기자는 ‘12년차 기자인데 아동학대보도, 자살보도, 재난보도, 감염병보도 등에 관한 기준을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화해야하는 미디어 환경을 생각하면 매번 많은 보도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확인하며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용기 내어 다시 기사를 쓴 기자, 그리고 시정권고의 취지를 살펴 사후조치 한 많은 언론사들처럼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언론계를 향한 ‘걱정’과 ‘우려’ 대신 ‘기대’와 ‘희망’이 자리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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