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인터뷰는 늘 어려운 일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피디에게 인터뷰는 필수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카메라를 앞에 놓고 말하라고 하면 쑥스러워하는 보통사람들을 안 좋은 일로 카메라 앞에 세우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저는 성격이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피디가 된 후 인터뷰가 늘 고민이었습니다. 카메라 앞에 있는 인터뷰이보다 피디인 제가 더 긴장해서 꼭 물어봐야하는 질문을 놓치곤 합니다. 또 예상치 못한 인터뷰이 답변의 중요성을 모르고 어눌하게 넘어갔다가 나중에 편집하면서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인터뷰란 상대가 최대한 말을 할 수 있게 배려해 가능한 한 필요한 멘트를 다 끌어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즉,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외국에서의 인터뷰는 더 난관입니다. 인터뷰를 하려면 통역이 필요한데요. 저에게 통역사가 인터뷰이가 말한 내용을 번역해줘야 다음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역사가 제게 통역을 해주는 동안 인터뷰이는 멀뚱멀뚱 기다려야 하는 거지요. 그동안 그 분은 뭐라 떠드는 건지 몰라서 궁금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조금 알아듣는 나라말일 경우, 통역을 건너뛰거나 인터뷰를 마친 후 나중에 호텔에서 자세히 번역을 합니다. 통역을 담당하는 분에게는 질문만 제대로 해달라고 사전에 부탁을 하죠.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습니다. 제가 못 알아듣고 건너 뛴 부분에 아주 중요한 말이 있는 거예요. 글로 기사를 쓰는 경우라면 그래도 낫지만, 방송인 경우 다시 촬영해야 합니다. 같은 사람을 다시 인터뷰 하면, 처음 인터뷰 할 때처럼 좋은 멘트가 안 나옵니다. 외국 언론(바로 저죠)과 인터뷰하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해서 잘 대해주다가 자꾸 오면 귀찮아지는 것이죠. 다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운 좋게 제가 듣고 싶은 멘트를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멘트가 리얼하지 않아서 아예 인터뷰를 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인터뷰 할 때는 온 정신을 바짝 챙겨야 합니다.
이렇게 인터뷰는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이의 감정 상태와 장소, 그리고 저에 대한 협조 정도에 따라 내용의 질이 엄청 다르게 나옵니다. 처음 피디 시작할 때, 작가들이 대본에 질문을 적어줬습니다. 그 질문지를 보고 사무적으로 주욱 읽기만 했던 적도 있습니다. 뭐가 빠질지 모르니 무조건 길게, 오래 인터뷰 했습니다. 당시 녹화테이프 1개당 1시간 분량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2-3개 분량, 그러니까 서너 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럼 인터뷰이가 완전히 지칩니다. 다음에 인터뷰 기회가 있다고 하면 아마 손사래를 치며 도망갈 정도로 질려버립니다. 피디로서 바람직한 방법은 절대 아니죠. 그래서 시행착오 끝에 가능하면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도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지만 핵심만 인터뷰하는 요령을 익혀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탈레반들을 인터뷰할 때입니다. 그들은 질문마다 대답 전에 ‘알라께서 말씀하신대로 유일신이며 알라의 은총으로 말씀을 전하는데 가라사대...’ 이런 말을 꼭 붙입니다. 모든 대답에 앞서 이 말을 하니 저는 미칠 지경입니다. 1분은 족히 걸리는 이 대사를 읊고서야 제 질문에 대한 답을 겨우 하는데 원래 답변보다 이 도입부 대사가 더 긴 적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빼고 말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분들이 종교의 영역에서는 아주 민감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엄청 짜증납니다. 나중에 편집할 때 다 잘라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마치 여러 겹의 포장지를 뜯고 난 뒤 아주 조그만 물건 하나를 건지는 것처럼 감질납니다.
일본에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질문 중간에 “에토데스네, 소레와데스네...(그러니까요. 그건 말이죠...)"라는 말이 계속 등장하는데 이것도 환장합니다. 딱히 뜻이 있는 말도 아니어서 무조건 잘라내야 합니다. 저는 가능하면 인터뷰는 15초에서 20초 분량으로 맞추는데, 6초나 되는 이 말들을 중간 중간 들어내려면 너무 힘이 듭니다.
인터뷰어가 답변 중에 욕이나 비속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말이야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말은 쓰면 안 된다고 얘기한 후 다시 진행하면 됩니다. 문제는 외국어, 특히 제3 세계 언어에 제가 모르는 욕이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그중에서도 아랍어는 비속어가 들어가기 쉬운 언어인데요. 원래 표준 아랍어(쿠사)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수단, 시리아 정도의 국가들만 사용하고, 나머지 아랍어권 국가 대다수는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랍어에는 특정 동물을 비하하는 비속어가 있는데 이게 나라마다 발음이 다 달라서 미처 잘라내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아랍어 통역사도 걸러내지 못해서입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해당 국가 대사관에서 항의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의 방송에서 자기네 나라 말이 모두 그렇게 비속어라고 생각한다며 정정해달라고 요구를 하는데, 저와 통역사는 도대체 어디를 정정해야하는지 몰라 해당 국가 대사관에 직접 가서 확인한 뒤에야 ‘삐-’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쉬운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터뷰의 기본은 대화 상대인 인터뷰이와 진정성을 나누는 작업입니다. 비록 일 때문에 만난 사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나눠야 합니다. 그 기본을 바탕으로 기술이 들어가야 좋은 인터뷰가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능하면 인터뷰하기 전에 같이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공감대를 이루는 사전 작업을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더라도 제 소개를 충분히 하고 왜 당신의 인터뷰가 필요한지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늘 마음속에서 사람 나고 방송 나지, 방송 나고 사람 나는 것 아니라는 진리를 되새깁니다. 이렇게 새가슴 김피디의 인터뷰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