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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트랙터 음란물”로 불린 정치인

  •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1

닐 패리시(Neil Parish)는 사실 뭐 그리 유명한 정치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정치인으로서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듯하다. 다만 문제는 좋은 쪽으로 남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영국 역사상 최초로 포르노 동영상을 본 것이 문제가 되어 사임한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6일 보수당 여성 의원 2명은 같은 당의 남성 의원이 본회의장과 위원회 회의실에서 음란물을 보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애초 그의 이름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 동안 대체 그게 누구냐며 여러 명의 의원이 후보자 물망에 올랐는데, 사흘 후 패리시가 자신이 그 의혹의 주인공이라고 손들고 나섰다. 패리시는 음란물을 보려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트랙터를 검색했는데 포르노 사이트로 연결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해서,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여론은 저 변명이 말이 되냐, 트랙터와 포르노 사이트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등의 논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패리시는 16세부터 집안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농부다. 현재 65세고 기혼자이며 자식 둘과 손자 둘이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의 일원이던 1999년 유럽의회의 의원으로 정치에 나섰다. 2009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을 역임하다가 2010년 영국 하원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12년간 티버튼-호니튼 지역구에서 의원직을 지켜왔다. 2019년 선거에서는 60%의 득표율을 보였다. 농업과 지역 및 동물 복지가 주된 관심사였고, 환경, 식량 및 농촌 사안위원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2013년 동성결혼 합법화에 관해서는 반대표를 던졌다.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영국 농업을 생각하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남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며 반대 입장이었으나, ‘일단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결정된 이상 영국 농업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도 농장을 직접 경영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패리시가 트랙터에 관해 검색했다는 것이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검색한 트랙터는 ‘도미네이터 컴바인 하베스터’라는 물건이라고 하는데, 그를 감싸는 측에서는 아마도 이 이름 중 ‘도미네이터’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우 유명한 고전학자이자 캠브리지 교수인 메리 비어드(Mary Beard) 역시 패리시를 지지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밝히면서도 본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트윗을 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티치아노가 그린 시저의 초상화에 관해 검색하고 있었는데 포르노 사이트로 연결되는 바람에 놀라서 급히 창을 닫았다는 것이다. 다만 다시 그 이름을 검색해서 해당 사이트로 재차 들어가볼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비어드 교수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 티치아노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패리시는 음란물 동영상을 단지 한 차례만 본 것이 아니라 두 번을 봤다. 한 번은 실수였다 친다지만 두 번째는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2

패리시는 일단 사임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안 그래도 보수당 정부는 여성혐오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참이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의 일요판인 ‘메일 온 선데이(Mail on Sunday)’가 익명의 보수당 의원을 인용해 노동당 여성 의원인 앤젤라 레이너(Angela Rayner)가 주간 총리 질의응답 시간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총리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주의를 흐리게 하려는 작전을 썼다고 주장했다. 레이너 본인은 물론 당적을 떠나 보수당의 여성 의원들 역시 이 같은 언급은 저속한 여성혐오에 불과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레이너 의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결국 안팎의 압력에 직면한 패리시는 가족 및 지역구의 분노와 그들에게 끼친 해를 인정한다며 의원직 사임을 표명했다. 의혹이 제기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사실관계와 관련해서도 솔직히 인정을 했다. 두 번째는 고의로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는 것이다.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한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패리시는 본인도 잘 모르겠다며 당시를 ‘제정신이 아닌 순간’이라고 묘사하며 완전히 잘못된 일이었다고 인정했다. 이성과 판단력을 다 내려놓았던 모양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제일 나은 일이라고도 밝혔다. 보수당의 해당 지역구 대리인은 패리시가 지난 12년간 지역 사회에 공헌했다는 점에 감사하지만 사임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얼른 발표했다.

사임을 할 때만 해도 해당 지역구는 안정적으로 보수당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6월 23일에 치러진 해당 지역구의 보궐선거에서 제2 야당인 자유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지난번 보수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30% 이상이 변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패리시 논란뿐 아니라, 총리 및 측근들이 방역지침을 어기고 수차례 파티를 벌이고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논란, 물가 상승 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아내에게 자기가 저지른 짓을 밝히며 패리시는 미안하다고, 당신은 천하의 멍청이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한다. 더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아내는 ‘매우 당혹스럽고, 음란물은 여성들의 존엄을 해치는 것으로 이런 의혹을 제기한 여성들이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또한 자기 남편이 “매우 정상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단지 멍청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의원직은 내려놓았을지언정 아내에게는 용서받은 모양이다. 역시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제일 나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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