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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고양이 학대범

  •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1

지난 2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인 웨스트 햄의 잘 나가는 수비수 퀴르트 주마는 집에서 약 40초짜리 동영상을 찍었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자막이 달린 이 동영상에서 주마는 고양이를 내려놓으며 멀리 발로 차낸다. 마치 축구공을 차듯이. 그리고는 겁에 질려 도망치는 고양이를 따라 온 부엌을 쫓아다니고 고양이에게 신발을 던진다. 심지어 역시 겁에 질린 듯한 아이에게 고양이를 잡게 한 후 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후려갈기기도 한다. 동영상에서 주마는 “맹세코 내 저 녀석을 죽여 버릴 거야”라고 말한다. 반려묘가 꽃병을 깨고 의자를 망가뜨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동영상을 촬영하고 다량의 웃는 이모지를 추가하여 소셜 미디어에 올린 사람은 주마의 동생이자 역시 프로 축구 선수인 요안 주마였다. 동영상에는 이런 장면을 촬영하는 요안이 매우 즐겁고 신난다는 듯이 킬킬 웃는 소리 역시 녹음되어 있다. 요안은 다음 날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여성에게 이 동영상을 보냈다. 이를 본 여성은 충격을 받고 요안과의 데이트를 취소했다. 요안이 고양이를 때린 것은 자기가 아니라 형이라고 변명하자, 이 여성은 저런 동영상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하고는 어울릴 생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가 보는 앞에서 고양이를 때리다니 말이다.

영국의 대중지인 더 선(The Sun)이 이 동영상에 대해 단독 보도한 이후 주마 형제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퀴르트 주마는 사과문을 발표했고 소속 구단인 웨스트 햄에서는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냈다. 구단은 이 사건과 관련해 주마에게 £250,000의 벌금을 물렸다. 구단 측에서는 벌금으로 물릴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마가 주당 벌어들이는 돈은 £125,000에 달한다. 달랑 두 주치의 보수인 셈이다. 주마가 낸 벌금은 몇 군데의 동물 복지 단체에게 기부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마가 큰 고양잇과 동물들을 위해 쉘터를 만드는 기금을 조성하는 자선 단체의 홍보대사라는 점이다. 본인이 이 사실을 인스타그램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다. 주마가 홍보대사로 있는 자선단체가 작년에 모아들인 돈은 £20,000라고 한다.

후원 기업인 아디다스는 주마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구단과의 광고 계약 중단을 고려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기업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속 구단은 주마를 틈틈이 시합에 기용했는데 관중들은 시합에 나선 주마에게 야유를 보냈다. 소속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대팀 선수와 충돌을 한 주마가 발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자 관중들은 그게 바로 고양이가 느끼는 감정이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한편 동생인 요안은 동영상이 논란이 된 후 한 번도 소속 팀인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더 선이 주마가 저지른 고양이 학대 행위에 대하여 저 정도의 처벌을 받은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응답자의 81.4%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답한 사람은 14.4% 뿐이었다. 주마를 형사처벌하라는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은 12만 명이 넘는다.

주마의 반려묘 두 마리는 영국 왕립 동물학대방지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RSPCA)에서 데리고 가 수의사에게 진료 받도록 한 후 보호하고 있다. RSPCA의 고발과 사람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RSPCA는 퀴르트 주마와 그 동생 요안에 대해 동물복지법 위반 혐의로 사인소추 절차(영국에는 한국의 검찰에 해당하는 국가기소청, 즉 Crown Prosecution Service, CPS가 있지만 이 기관 이외에 사인 역시 기소를 진행할 수 있다)를 진행했다. 당시 RSPCA 측은 축구선수란 특히 영국에 있어서는 롤 모델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실제로 이 동영상이 퍼져나간 후 고양이를 상대로 유사한 가혹행위를 벌인 동영상들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2

지난 5월 말, 형제는 나란히 재판에 출석했고 퀴르트 주마는 180 시간, 요안은 140 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또한 퀴르트 주마의 경우 향후 5년간 고양이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처벌은 그리 중하지 않았지만 형제가 겪어야 했던 엄청난 사회적 비난은 동물 학대에 관한 일종의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비난이 지나쳐 살해 협박에까지 이르렀고 인종차별적 표현 역시 빈번히 등장했다는 것이다. 주마 형제는 흑인인데다가 국적도 프랑스다. 이들에 대한 위협이 하도 거세어서 담당 판사는 주마 형제의 거주지역을 기사에서 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들에 대한 인신공격은 영국 프로 축구 역사상 가장 정도가 심했다는 것이 주마 측 변호사의 주장이다. 관련하여 100개가 넘는 SNS 계정이 폐쇄되었고 이들은 현재 24시간 경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정의감이라는 명목 하에 행하는 이런 언행 역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소식을 다룬 한국 매체들이 대개 요안 주마를 형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퀴르트 주마는 1994년생이고 요안 주마는 1998년생이다. 어떤 매체에서인가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요안을 형이라고 표기한 것을 달리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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