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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media of the world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와 기자들의 인지편향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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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초 뉴욕타임스의 편집인 딘 바케이가 기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트위터를 좀 적게, 신중하게 사용하고 기사를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트위터를 사용할 거라면 트윗을 하거나 스크롤링하며 플랫폼에서 보내는 시간을 의미 있게 줄이는 것이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곧 편집인 자리에서 내려오는 마당에 그가 이런 껄끄러운 부탁을 기자들에게 한 건 여러 연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다.

뉴욕타임스의 전 기술문화 담당 기자였던 테일러 로렌츠의 인터뷰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녀는 뉴욕타임스 등에 근무할 당시 트위터를 통해 심각한 괴롭힘을 당했다. MSNBC와의 인터뷰에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기까지 했다고 고백1)할 정도였다. 트위터를 통해 받은 수많은 모욕과 온라인 괴롭힘이 기자들에게 전이되면서 외면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딘 바케이 편집인이 전례를 뒤집는 새로운 원칙을 기자들에게 주문한 건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보도나 피드백 도구로 트위터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우리의 피드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가 될 때 특히 더 우리 저널리즘에 해롭다”고도 언급했다. 트위터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기자들은 편향된 의견들에 압도당하고 그것을 여론으로 착각하는 왜곡된 인지편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기도 했다.

딘 바케이의 이러한 인식은 근거가 전혀 없지 않다. 지난 3월 발행된 이지혜 등(2022)의 논문을 보면 그의 요청이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들 연구진은 2016년 미국 대선을 취재했던 기자 73명의 트윗, 기사, 방송 스크립트 22만 건 이상을 분석해 기자들이 트위터에서 더 인지편향적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기자들은 기사를 작성할 때와 달리 트윗을 올릴 때 감정적인 단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뉴스 기사보다 분석적 단어나 통계, 숫자 등을 덜 쓰는 경향을 보였다. 논문은 트위터에서 기자들의 자기 검증은 적었고 직관적 추론이 더 많았다는 걸 시사한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인지시스템을 느낌이나 인상만으로 즉각 작동하는 시스템1과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시스템2로 구분해 설명한다. 이러한 인지이론의 개념을 빌리면 직관과 감정, 편향에 휘둘리기 쉬운 시스템1에 대한 기자들의 의존도가 트위터에서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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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트위터 거버넌스 구조에 큰 변화가 닥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조차 ‘변덕의 왕’이라 불리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농담처럼 트위터 인수안을 꺼내놓을 때부터 트위터의 개편 방향을 여러 차례 제시해왔다. 피드 알고리즘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겠다는 제안부터 편집 기능의 도입, 표현의 자유 강화 등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파장을 낳을 특별한 아이디어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저널리즘 생태계가 주목할 만한 발언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부분이다. 그는 2022년 4월 테드(TED) 컨퍼런스에 참석해2) 자신이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스스로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자’라고도 했다.

통상 실리콘밸리가 강조하는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는 그것이 혐오와 온라인 괴롭힘, 음란, 허위정보를 담고 있더라도 이를 규제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다. 이를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라 부른다. 무정부주의적 색채가 강한 하이테크 자유주의와 반국가주의로 묘사되는 이 이념은 실리콘밸리 신흥 기술 부자들의 핵심 세계관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머스크 또한 예외이지 않으며 트위터 인수과정에서 이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머스크의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가 트위터에 투영될 경우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콘텐츠 심사(content moderation)’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알렉스 존스나 트럼프의 계정 영구정지와 같은 조치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치 홍보 사이트의 광고를 허용했던 2016년 11월의 그날로 회귀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가정이지만 ‘변덕꾼’ 머스크는 언제든 이러한 정책을 관철하려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오죽하면 EU가 인수 절차가 마무리도 되지 않은 시점에 공개적으로 경고3)를 보낼 정도겠는가. 이 발언이 소개된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복구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기자의 트위터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 지금도 국내외 다수의 언론인들은 트위터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곳에서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고 있고, 대화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기자들은 트위터에서 목소리가 큰 집단에 더 많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검증이 결여된 발언들을 종종 하게 되고, 논쟁에 가담하게 되며 저널리즘의 신뢰를 갉아먹는 실수도 저지르게 된다.

문제는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의 풍경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찰리 와젤은 머스크 이후의 트위터가4) “중차대한 사후판단을 거의 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양극화되어 점점 독성이 강해지는 정치문화 환경을 곧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확장해서 해석하면 기자들이 앞으로 반향실에 갇힐 확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5)다. 기자도 예외일 순 없다. 기자 집단처럼 빠른 속보를 담당해야 하고, 독자들과 소통까지 하려면 필연적으로 인지적 구두쇠의 관성에 더욱 기대게 된다. 이럴 때 외적 조건 즉 소셜미디어를 둘러싼 거버넌스와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달라지면 기자의 인지편향 경향성은 더 강화될 수도 있다. 우리가 딘 바케이 편집인의 주문을 흘려듣지 않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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