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소말릴란드의 사자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예전에 아프리카 ‘소말릴란드’라는 나라로 일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가려면 외국인은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한국에는 대사관이 없어서 소말릴란드 비자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비자를 한국에서 바로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팁을 알려드리면 유럽국가나 미국에서 아프리카 비자를 받으면 비자 요금이 많이 비싸다는 겁니다. 조금 싸게 비자를 받으려면 일단 한국에 있는 아프리카 나라들 중 대사관이 있는 나라의 비자를 받습니다. 혹은 아프리카에도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국가가 있는데 그런 나라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남단 쪽 국가를 가려면 남아공이 무비자 국가이기 때문에 남아공을 먼저 갑니다. 그리고 남아공을 거쳐 나미비아나 기타 남단 국가들의 비자를 받고 최종 가고자 하는 나라로 가면 됩니다. 아프리카 북단쪽이면 이집트, 동아프리카는 케냐 등 거점을 거쳐 해당 나라로 입국합니다.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국가입니다. 이 나라를 가려면 에티오피아를 먼저 가거나 이집트를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중간 기착지 국가에 와서 비자를 받으면 많이 싸고 무엇보다도 급행료가 잘 통해서(급행료도 쌉니다, 제 글을 꾸준히 보셨다면 급행료가 뭔지는 아시겠죠?) 비자가 금방 나옵니다. 취재하러 가기 전까지는 소말릴란드라는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이집트가 가까울듯해서 이집트로 먼저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주재 소말릴란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소말릴란드 국제공항에 입국했습니다. 말이 국제공항이지 한국의 남부터미널보다 작고 낡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기내 방송으로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소말릴란드 돈을 200달러 정도 환전해야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200불 어치 소말릴란드 돈을 바구니에 담아줍니다. 바구니에 돈이 한 가득입니다. 아마 가난한 나라이다 보니 외화 확보를 위해 외국인에게만 강제 환전을 시키나 봅니다. 공항을 나와 물어보니 이 나라에는 원래 제대로 된 호텔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운 좋게 중국 사람이 지은 호텔이 개장했다고 알려줍니다. 호텔을 찾아가니 입구에 붉은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아프리카의 중국 객잔’ 같았습니다. 대충 아침도 먹을 수 있고 침대도 잘만 하더라고요.
이 호텔 정원에는 운치 있는 아프리카풍의 멋진 테라스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취재를 나가도 점심은 호텔에 와서 먹어야 했는데, 변변한 현지 식당이 없어서입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분위기 있게 차를 마신다고 호텔의 시그니처인 테라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 멀리서 자그마한 고양이 같은 것이 살금살금 걸어오는 게 보입니다. ‘어머, 아기 고양이네…’라고 생각하며 저는 엄마 미소를 띠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가까이 왔을 때 자세히 보니 고양이 치고는 덩치가 제법 있어 보이는 거예요. 순간 제 머릿속에는 ‘혹시 사자? 아기 사자?’라는 생각이 번뜩 스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리가 막 떨렸습니다. 아기 사자 옆에는 엄마나 아빠 사자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저는 큰일 난 겁니다.
다급히 큰소리로 호텔 매니저를 불렀습니다. 그 고양이를 가리키며 ‘저거 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중국인 매니저는 자세히 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사자 아니랍니다. 고양이라고 확신한답니다. 저보다 소말릴란드에 하루라도 더 있었던 사람의 말이니 믿고 안심했습니다. 이윽고 중국인 매니저가 현지인 직원을 부르더니 “여기 한국 마담이 고양이 보고 많이 놀랐으니 어서 고양이 치우라(This Korean madam surprise, move this cat)”는 문법 따윈 무시한 초 간단 영어를 외치며 직원을 다그쳤습니다.
현지 직원이 문제의 그 고양이를 옮기려 정원 안의 수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빛의 속도로 뛰쳐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자가 맞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저는 ‘그거 봐... 고양이 아니라니까. 벌크 업이 다르더라고’ 이러면서 중국인 매니저, 현지 직원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호텔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엄마 사자가 정원에 보입니다. 다리가 막 떨립니다. 저는 분위기 잡고 아프리카풍으로 차 한 잔 먹으려다 사자밥 될 뻔했습니다.
더 웃긴 건 그날 호텔 직원들 중에 사자를 처음 봤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겁니다. 아프리카라고 사자를 흔하게 보는 것은 아니랍니다. 아프리카 사자들은 보호 구역이나 특정 장소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남아공에 취재 갔을 때 우버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운전기사에게 “사자를 본 적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런 건 부자들이나 보러 가는 거라고 대답합니다. 아프리카 사파리는 가난한 현지인들에게는 많이 비쌉니다. 그래서 그런 동물을 보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동물 다큐멘터리는 이른바 ‘연기파’ 사자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촬영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보호구역에 허가를 받고 들어가서 사자를 촬영합니다.
이 사자들이 늙어서 은퇴하면 백인들의 사냥용 사자로 제공됩니다. 흔히 ‘트로피 사냥’이라고 불리는데 늙은 사자를 초원에 풀어놓고 일정 금액을 낸 백인들이 사냥복 차림으로 엽총을 들고 가 쏘아죽입니다. 평생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던 사자들은 이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백인들은 죽은 사자를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전에 ‘세실’이라는 사자가 이렇게 트로피 사냥으로 죽임을 당한 채 기념사진으로 촬영된 것을 두고 전 세계적 논란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아랍 부호들 사이에 헬리콥터를 동원해 얼룩말이나 사자, 기린을 사냥하는 상품이 아프리카에서 잘 팔린답니다. 아프리카 사자들의 불행을 알고부터는 어릴 때부터 동경하며 보던 동물의 왕국이 싫어졌습니다. 인간이 사자를 지배하기 전에는 아마도 사자가 아프리카의 주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날 사자의 신세는 많이 서글픕니다. 라이온 킹을 좋아했던 제 아들의 동심 속 사자는 늘 용맹하고 멋진 갈기를 가졌습니다. 저는 아들의 라이온 킹을 지켜주고 싶고 한때 아프리카의 주인이었을지 모르는 사자를 인간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