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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 속 내 아바타가 명예훼손을 당한다면?
- 메타버스 시대의 인격권
- 글
2021년 10월,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회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저커버그는 자신의 회사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닌 메타버스 기업으로 알려지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후 메타는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메타버스 세계인 ‘호라이즌 월드’라는 플랫폼을 내놓았고, 지난 2월에는 음성만으로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빌더봇’이라는 AI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메타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국내기업인 네이버 등도 메타버스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요.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이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현실세계와 동일한 활동을 할 수 있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요. 특히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면서 메타버스에서 회의를 하거나 채용안내, 사업설명회, 면접전형 등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네이버가 만든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Zepeto)의 경우, ‘MZ 세대의 놀이터’로 불리며 전 세계 이용자수가 3억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나를 닮은 가상 캐릭터를 활용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메타버스, 그 활용영역이 얼마나 확장될지 기대하게 됩니다.
가상공간 속 아바타 대상 성범죄 증가
그런데 최근, 메타버스에서 성범죄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메타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연령층이 10·20대이다 보니 피해를 입는 대상 역시, 아동·청소년인 경우가 많은데요. 얼마 전, 메타버스에서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외형의 아바타를 만든 후 지속적으로 아이템 등을 선물하며 접근해 미성년자들에게 성착취물을 제작하게 한 30대가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반면, 그로 인한 문제점이나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박아란 성신여대 교수는 “2018년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등장인물들처럼 고글과 헤드셋, 글러브 등으로 구성된 햅틱 슈트를 착용하고 메타버스의 아바타가 대신 느낀 자극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도 현실화될 수 있다”면서 “가상세계의 성범죄가 실제 현실 속에서처럼 직접적인 신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실제로 메타버스 안에서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은 실제와 다르지 않은 충격을 받았음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메타버스 운영업체들은 자사 플랫폼 안에서 아바타가 성범죄 위협을 받았을 때 ‘보호막’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거나 불편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튕겨낼 수 있는 ‘퍼스널 버블’ 조치를 취하는 등 나름의 해결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 더 알아보기
- 박아란(2022.3.). 메타버스에서의 인격권 침해와 대응에 대한 논의. 계간 <언론중재> 2022년 봄호.
- 언론중재위원회 공감블로그. 가상세계 속 아바타가 성범죄를 저지른다?
메타버스 내 초상권, 명예훼손 침해도 늘어
- 인격권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민법 개정안 발의되기도
메타버스와 관련해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인격권 침해 사례 중 하나는 초상권입니다. 초상권이란 자신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자신의 초상이 공표되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데요. 가상공간 안에는 특정 인물의 실제 모습과 유사한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실제 모습과 동일한 외형의 아바타로 인한 초상권 침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최근 한 보도에서는 가상 인간 모델 시안을 제작하기 위한 참고용 영상 촬영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가상 인간 모델이 제작되어 화보와 소셜미디어 등에 활용되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아바타를 통해 토크쇼 등을 진행하며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V튜버가 자신의 아바타를 상대로 비방을 퍼뜨린 다른 V튜버와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또 올해 초에는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세계적 메타버스 기업 로블록스에 K팝 저작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로블록스 내 이용자들이 만든 게임방에서 K팝이 재생되는 것은 물론 국내 가수들의 사진이 무단 복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초상권, 명예훼손, 저작권 등 메타버스 내 인격권 침해 문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4월 5일 법무부는 그동안 판례로만 인정됐던 인격권을 민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법률 개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시작단계이긴 하지만 인격권 침해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의 명시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최근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인격권 침해에 대응할 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의견도 있는데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메타버스 내 디지털성범죄,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등 다양한 인격적 이익 침해 문제가 ‘가상’이 아닌 ‘현실’화된 만큼, 인격권 보호와 예방을 위한 방안이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