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쇼킹 아프리카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피디로 일하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아프리카였습니다. 어릴 적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드넓은 초원을 뛰는 사자나 기린. 머릿속에 상상으로만 자리하던 그 대륙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해외 촬영을 다닐 수 있는 직업인 피디가 되고나선 어떻게든 아프리카 촬영 한번 가보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아프리카 케냐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케냐에 있는 마사이족을 촬영하기로 하고 호기롭게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최초 아프리카 방문국은 케냐였습니다. 케냐는 듣던 대로 덥고 우리나라와 다른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케냐 현지 코디네이터를 만나고 다음날부터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마사이족이 산다는 마을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겁니다. “어라? 사람들이 아무도 없네? 단체로 사냥 나갔나?”하고 코디네이터에게 물어보니 기다려 보랍니다. 드디어 해가 중천에 뜨니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마사이족 어디 갔어요?”라니까 어떤 남자가 “아직 출근 전”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때만 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알게 됩니다.
어디선가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이 마사이족이랍니다. 자료와 사진, 영상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마사이족은 그들만의 의상을 입고 상의는 입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사이족들은 현대인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윽고 들은 진실은 마사이족도 이제는 다들 도시에 가서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곳은 말하자면 민속촌 같은 마을인 것이고, 그들은 이곳으로 출근을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전통적인 마사이족의 모습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사냥만으로 먹고사는 전통 마사이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망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마사이족의 생활을 어떻게 촬영을 하겠습니까. 피디인 제가 망연자실해 있으니 코디네이터가 와서 속삭입니다. “걱정마세요. 여기 출퇴근하는 마사이족들은 프로입니다.” 저는 이 말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장님 비슷한 사람이 다가와 코디네이터랑 쑥덕쑥덕하더니 마사이족의 상징인 사냥 나가기 전에 창 들고 뛰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답니다. 저는 놀라서 그럼 촬영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집에 들어가 웃통을 벗고 민족의상을 입고 나옵니다. 진짜 마사이족입니다. 그리고 이장님이 말씀하십니다. “10분 뛰는데 50불”이라고.
어차피 출연료도 드려야 하니 그러자고 했습니다.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마사이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창을 들고 막 뛰어갑니다. 그분들이 뛸 때 표정이 진짜 리얼했습니다. 정말로 사냥 가서 사자 한 마리쯤은 때려잡을 기세였습니다. 그렇게 딱 10분이 지나자 모든 행동을 멈춥니다. 시간이 다 된 것입니다. 카메라 감독님이 다 못 찍었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돈을 더 드리고 10분을 연장합니다. 마사이 청년들이 다시 뜁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카메라 감독님은 촬영을 다 못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장님이 저에게 특별히 5분 서비스를 해주신다 합니다. 도시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고 자란 이 젊은 마사이족 청년들은 이미 지쳐 힘들어 보입니다. 말이 쉽지, 10분간 쉬지 않고 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이장님의 서비스로 다시 5분을 더 뜁니다. 이렇게 노래방도 아닌데 10분을 충전하고 5분 서비스를 받아 간신히 촬영을 마쳤습니다.
촬영이 끝나 정리를 하고 있는데 이장님이 다가오시더니 저에게 장르 불문하고 언제든 출연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마을 구성원 모두 준비가 되어 있다며 다큐멘터리든 예능이든 말만하랍니다. 고난이도 에로물도 가능하다고 해서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가슴속에서 동경하던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집니다. 이것이 저의 아프리카 첫 촬영입니다. 저는 오만하게 그동안 본 영상과 이미지만으로 제멋대로 아프리카를 판단하지 않았나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프리카 취재를 많이 갔습니다. 안 가본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제 머릿속에 있던 상상 속 아프리카를 지우고,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첫 촬영이었던 마사이족 취재가 큰 경험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원래 그대로인데 외지인들이 와서 제멋대로의 아프리카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유럽 열강의 식민지 시대도 그런 생각들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을 지도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아로 아프리카는 그 어느 때보다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엘니뇨 현상으로 많은 대지가 황무지가 되기도 합니다. 대책 없는 봉쇄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보다 기아로 사망합니다. 선진국의 경제 위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가서 ‘데일리 브래드’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을 빵을 구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가슴에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동시대를 사는 같은 인류로서 아프리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아프리카 취재를 기획하며 첫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다시 가슴에 새겨 봅니다. 그렇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많이 배운 새가슴 피디는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