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우크라이나 전쟁과 난민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스 솔루션스 변호사)
영국은 지난 1월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백신 패스 제시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걸리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다만 걸린 경우에도 증상이 경미하다면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격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학교나 직장을 가지 않고 며칠 쉬는 걸 권장한다. 보통 전염성이 있는 병에 걸렸을 때와 같다. 즉, 코로나는 존재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특히 일상생활이 달라지는 바는 없게 되었다. 그러니 언론에서도 코로나와 관련된 현황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마치 코로나 시절은 지나간 듯 취급한다.
하지만 두루 평안하여 뉴스거리가 없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는 법.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것이 놀랍게도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국가 간 전쟁이다. 유럽에서 제1, 2차 세계대전이 모두 시작되었으니, 다시는 그와 같은 대규모의 전쟁이 없도록 하려는 노력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 유럽연합(EU)이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감행해 EU에서 탈퇴하고 팬데믹이 선포되고 전쟁까지 벌어지는 몇 년 간의 상황에서 유럽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금방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러시아의 초기 계산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 등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간다.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 피해를 덜 주겠다는 인도주의적 배려가 전혀 없는 러시아 측의 폭격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건물의 80%가 파괴된 도시도 있다고 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의 전체 인구 4천4백만 명 중 나라를 떠난 사람들은 3백6십만 명에 달한다. 대개 이웃의 폴란드나 루마니아 등 인근의 나라들로 향하고 있지만, 영국으로 오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영국인들 역시 이들을 돕고자 기꺼이 나서고 있다. 영국 정부는 3월 13일,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사이트를 개설했다. 난민들에게 최소 6개월간 무상으로 살 곳을 제공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이 사이트에 등록할 수 있는데, 개설 첫날 등록자 수가 무려 십만 명을 넘어섰다.
BBC 등 영국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십여 년 전에 여행지에서 만났던 우크라이나 가족을 도와주겠다는 60대의 독신남도 있고, 자기 아이가 넷인 북적북적한 집에 어린아이가 딸린 엄마를 받겠다고 나선 30대의 부부도 있다. 이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나섰다고 말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그것도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과 시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난민과 같이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나 조언 역시 최근 언론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주제다.
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는 가구에게는 한 달에 350파운드(약 56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를 지급하기로 했고, 또한 난민 한 명당 약 만 파운드 정도를 배정하여 이들이 영국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초기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영국 정부의 방침에 대해 관료주의적이며 느리다는 비난의 목소리 또한 있다. 하루가 아쉽게 절박한 이들을 위해서라면 더욱 속도를 내어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3월 24일 경까지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발급한 비자는 이미 1만 2천 건이 넘는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거나 수용할 의사를 밝힌 나라는 최소 37개국이라고 한다. EU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27개 회원국 어디에서나 최장 3년간 머무르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들은 주택이나 의료, 교육 시스템 등을 이용할 수 있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각국의 조치가 여태까지의 다른 난민들에 대한 태도와 비교할 수 없이 적극적이고 호의적이어서 백인 우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은, 이를 참고하여 앞으로의 비백인 난민들에 대한 태도를 시정하는데 반영할 일이지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덜 호의적으로 굴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몰도바의 경우 인구가 고작 260만 명이지만 지금까지 받아들인 난민이 34만 명에 달한다. 인구 비율로 치면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나라다. 몰도바의 대통령은 “난민을 돕는 것은 국가의 도덕적 의무”라며 “이들에게 등을 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IMF 자료에 따르면 몰도바의 2021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2,396백만 달러로 세계 143위다. 이에 비하면 2021년 한국의 GDP는 1,823,852백만 달러로 세계 10위다. 한국 역시 이미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 3,800여 명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체류 연장 조치를 하는 등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뉴질랜드도 적극적 난민 수용 의사를 밝혔고 심지어 난민 문제에 있어 매우 소극적이었던 일본도 이미 난민을 받아들였다. 국가 위상과 경제 규모에 걸맞은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지원에 나서기를 바란다. 물론 그 이전에, 이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팬데믹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