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본문 하단

Newmedia of the world

포털의 자율규제 참여 유도를 위한 기술적 대안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Newmedia of the World 1

‘탈진실의 시대’, 언론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여야 할까?
이 짧은 질문 안엔 수많은 행위자들과 제도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만약 그 해답이 정부라면, 해당 사회는 언론의 자유가 박탈된 공간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정부가 언론 여부를 획정할 권리를 독점한 곳에 민주주의가 싹틀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만약 플랫폼이라면 또 어떨까. 기술권력에 저널리즘이 지배당하는 사회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언론과 그 신뢰 여부를 기술권력이 재단하고 판정함으로써 저널리즘을 기술의 하위 체계에 복속시켜 놓은 사회 역시 건강하다 말할 수 없겠다.

이처럼 언론사의 신뢰 여부를 가르는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는 질문은 답을 찾기 쉽지 않은 물음이다. 그렇다고 마냥 회피하기도 어려운 주제다. 허위조작정보 확산방지를 위해서라도 언론 여부, 그 신뢰 여부를 어떤 식으로든 정의해야만 한다. 모든 정보 생산자를 검색과 소셜미디어 피드만을 활동무대로 삼게 놓아두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Trust.txt1) 는 언론사의 신뢰 여부를 언론 스스로 결정하자는 철학에서 도출된 기술 프레임워크다. 워싱턴포스트, 폴리티코, AP 등 쟁쟁한 디지털 언론사들이 가입한 협회, ‘디지털 콘텐트 넥스트(Digital Content Next)’2) 가 제안했고 비영리조직 ‘저널리스트(JournalList)’가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언론 관련 협회가 언론사의 신뢰를 보증하면, 다시 언론사가 협회의 신뢰를 보증한다는 접근법에 기초한다. 최근에는 AAM(미국 감사 미디어 연합, Alliance for Audited Media)이 합류할 정도로 성장세도 빠르다.3)

여기에 ‘txt’라는 기술 프레임워크가 더해진다. txt 프레임워크는 검색봇과의 대화를 위한 장치다. 우리에게 익숙한 ‘robots.txt’와 같이, 검색 기계가 해석할 수 있는 언어로 작성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당 언론사가 어떤 협회 소속인지, 어떤 언론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지, 어떤 소셜미디어 계정을 관리하고 있는지 등의 정보가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져 ‘trust.txt’라는 이름의 파일로 저장된다. 이 저장된 파일을 언론사와 협회가 각각 자신들의 웹사이트 최상단 폴더에 업로드 해 두면 검색봇이 해당 파일을 읽고 신뢰를 검증하는 기초 데이터로 활용하게 된다. 협회는 언론사의 신뢰를 보증하는 공인된 데이터를 플랫폼이 선호하는 형태(trust.txt 파일)로 공개할 뿐, 플랫폼의 언론사 랭킹 알고리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뉴스를 생산하는 모든 사이트에서 trust.txt 파일을 읽어 들여 협회와 언론사를 교차검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자율적으로 언론사에 대한 신뢰 수준을 판단하게 된다. 요약하면 trust.txt는 언론사의 신뢰 수준을 판단하는 일종의 참고 자료로서, trust.txt를 게시한 언론사는 플랫폼의 판단에 따라 검색 순위 등에서 배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구조다.

Newmedia of the World 2

trust.txt는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미디어와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를 구별 짓기 위해 저널리즘 진영이 떠올린 기술적 묘책이다. 그간 플랫폼 기업들은 지속된 외부 압박으로 언론사의 신뢰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려 왔다. 허위조작정보를 분류하고 걷어내지 않으면 막대한 페널티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수 플랫폼들은 IFCN(국제팩트체크네트워크, International Fact-Checking Network4) 같은 공인된 저널리스트 조직의 도움을 얻어 허위조작정보를 부분적으로 걸러내 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trust.txt는 플랫폼 기업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언론의 신뢰를 플랫폼이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데 따른 부담과 후과를 더 이상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도 있다.

언론사-언론협회-플랫폼, 이 삼각 네트워크의 협업으로 허위조작정보 생산주체들을 플랫폼 안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기술 기반은 마련됐다. 남은 숙제는 이 신뢰 네트워크를 더 확산시켜 그 규모를 글로벌 차원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 신뢰에 균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trust.txt 프레임워크는 국내에서 논의 중인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에도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던져준다. 포털이 참여하지 않으면 규제 효력을 잃게 되는 딜레마 앞에서, 개방적이고 표준적인 기술 프레임워크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통합형 자율규제기구 설립안’은 포털 등 플랫폼과의 협력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짧게 서술하고 있다. 5)

“뉴스 유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포털사들과 언론사가 제휴를 함에 있어서 자율규제 체제에 가입해 있는 것을 기본 자격으로 하고, 기구의 제재 결정 등을 이런 제휴의 계속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포털사와의 협약을 추진할 수 있다.”

자율규제 체제에 포털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협약 이외의 유인 방법이 많지 않다는 고민이 읽힌다. txt 기술 프레임워크는 포털의 자율규제기구 참여를 강제하진 못하더라도 그들이 참고할 가치가 있는 데이터를 통해 참여를 유인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더 많이 참고할수록 서비스의 권위를 더 높일 수 있는 포털 입장에서 이 소중한 데이터를 거부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데이터는 개방적이고 표준화된 기술친화적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니 포털의 참여를 유인하는데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행위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와 프로토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권력이기도 하다. 그간 저널리즘 진영과 제도 설계자들은 포털을 설득할 때 그들만의 언어와 프로토콜로 압박하거나 을러댔다. 이제는 그 관성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포털과 같은 기술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프로토콜로 접근해 보는 것이 때론 큰 수고를 덜어주는 현명한 방책일 수도 있다.


지난 기사 ·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