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백신 접종 거부의 대가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가 지난달 열렸다. 하지만 호주오픈에 대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은 오히려 대회가 벌어지기 전 단계에 더 뜨거웠다는 느낌이 든다.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를 둘러싼 논의가 워낙 거셌던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백신을 맞지 않았다. 백신 접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그런데 호주오픈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해야 한다. 선수뿐 아니다. 관계자, 심지어 관객들도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아니면 접종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호주는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 입국 자체를 불허하므로, 그의 대회 참석 가능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만일 조코비치가 우승하면 호주오픈에서 통산 10번째 우승을 하는 대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호주테니스협회와 호주오픈이 열리는 버지니아 주정부는 조코비치가 작년 12월, 코로나에 걸려서 이미 항체가 있다는 이유로 백신 접종 면제 허가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난 1월 5일 멜버른 공항에 도착한 조코비치에게 호주 이민부는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다는 것은 입국 허용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그의 비자를 취소했고 시설이 좋지 않기로 악명이 높은, 주로 난민을 수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이민부 관할 호텔에 억류했다. 조코비치는 비자 취소 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는데, 법원은 공항에서의 입국거부 처분에 절차적인 미비가 있다는 이유로 비자 취소 처분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조코비치는 극적으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발하는 여론이 매우 거셌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조코비치에 대해 백신을 면제해주는 것이 유명인 내지 힘 있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특혜를 주는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또한 그가 과거 백신과 코로나19에 대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점, 코로나에 걸린 이후 격리에 관한 규정을 지키지 않은 듯하다는 점 역시 드러났다. 결국 호주 이민부 장관은 조코비치의 호주 체류가 사회 질서와 대중의 건강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직권으로 다시 비자 취소 처분을 내렸다. 조코비치 측 역시 항소를 했으나 연방법원에서 만장일치로 이민부 장관의 처분을 지지하는 결정을 했고, 그는 결국 대회가 열리는 당일 호주에서 추방되었다.
호주오픈은 조코비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이 경기를 통해 메이저대회 최다승 신기록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것이다. 현재 조코비치는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이나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와 함께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 타이기록인 20회를 기록 중인데, 지난해 메이저대회에서 3차례 우승하는 등 상승세였고 특히 호주오픈에서는 최근 3년 연속 우승하는 등 강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거부함으로써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조코비치가 만일 백신 접종 거부를 고수한다면 이후 프랑스나 미국에서 열리는 메이저대회 참가 여부도 불확실하다. 프랑스나 미국 역시 백신패스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꿋꿋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니 이 정도 되면 백신이 해롭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지 싶다. 의학적 상식에 반하는 신념으로 인해 응징을 받는 셈인데, 다만 조코비치와 같은 유명인들의 경우 본인이 믿는 바가 스스로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당시 호주에서도 백신에 대해 의심을 갖는 사람들, 백신 접종 의무화에 대해 반발을 하는 사람들이 조코비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호주 정부로서는 사회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를 추방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의 변종 오미크론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면서 백신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오미크론의 경우 백신은 감염 자체를 막는 효과보다는 중증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는 역할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체코에서는 유명 포크송 가수 하나 호르카가 일부러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체코에서도 여러 사회•문화 시설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최근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했다는 증명을 보여줘야 하는 제도가 생겼다. 백신을 맞느니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행한 일이었으나 결과는 57세의 때 이른 죽음이었다. 호르카는 1월 16일에 사망했다. 조코비치에 대한 비자 취소가 타당하다는 호주 연방법원의 결정이 있었던 바로 그날이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호주 정부의 조코비치 추방이 뜻밖의 결과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조코비치의 모국인 세르비아에서는 호주 정부의 조치에 대한 강력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민적 영웅인 조코비치에 대한 처우를 국가적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세르비아 정부는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이 호주 광산업체에 주었던 리튬 채굴권을 회수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환경단체들의 요구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다가오는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튬 채굴권 회수는 전 세계적인 리튬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고 향후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생산에 적지 않은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테니스 스타의 백신 접종 거부가 쏘아올린 작지만은 않은 공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