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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경찰을 믿지 마세요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새가슴PD의 분쟁현장 르포 이미지 1

‘경찰을 믿지 마세요.’ 이 말은 우리나라 말고 몇몇 제3세계 국가에서 이야기입니다. 경찰은 치안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외국에서 정복 입은 경찰이 총을 차고 와서 뭔 영장이라고 종이를 들이밀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도 침착하게 그 나라 주재 한국대사관에 먼저 연락해야 합니다. 이 경찰이 가짜인지, 혹은 진짜라도 돈을 뜯으려는 건지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2016년 10월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한국인 사업가가 납치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납치범은 집에 총기를 들고 들어왔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집에 온 사업가를 현장에서 납치해 차에 태웠습니다. 납치 장소는 프렌드쉽 플라자라는 지역으로 집값이 비싸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당시 한국 교민이 30가구 정도 살고 있었고, 각 집을 지키는 경비들도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CCTV도 많은 곳입니다. 그런 데에서 한국 사업가를 백주대낮에 납치할 수 있었던 것은 납치범들이 모두 필리핀 현직 경찰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복을 입고 당당하게 차에 타라고 하면 누가 안 타겠습니까. 이처럼 현역 경찰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몇 년 전 터키에서 벌어진 러시아 대사 총격 살해사건의 범인도 전직 경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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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 경찰은 엄청난 박봉이라 큰돈을 뜯어낸 후 도망가기도 합니다. 취재하는 저도 현지 경찰에게 당한 일이 부지기수인데요. 그중 대표적인 사건 세 가지를 말씀드리면,

1. 남수단에서 한밤중에 낯선 사람들이 호텔에 쳐들어와 무슨 종이를 내밀며 인터폴 어쩌고 하더니 저를 끌고 갔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냄새나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자야했습니다. 빈대가 얼마나 많던지 온 몸을 긁다가 날이 샜습니다. 다음날 무슨 혐의냐고 물으니 제가 한국에서 매춘혐의로 기소가 되었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중에 귀국해 확인하니 완전 새빨간 거짓말이었죠.) 사실인지 확인할 길 없이 좌절해 있는 저에게 현지 경찰서장이 오더니 빅딜을 제안합니다. 자기가 눈감아 줄 테니 돈을 달라는 겁니다. 어쩔 수 있나요. 결국 돈 주고 풀려났습니다.

2. 알제리 공항에서는 경찰이 마약을 소지 했다며 끌고 갔습니다. 마약 수사대라고 불리는 복장부터 무시무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물건을 모조리 꺼내놓고 뒤져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약이 안 나옵니다. 억울해서 물어봤습니다. 제 가방에 마약이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마약수사대가 데리고 있는 마약 탐지견이 제 가방 앞에 앉았다는 게 증거라고 합니다. 마약 탐지견이 마약 냄새를 맡으면 그 앞에 앉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래서 마약 탐지견을 한 번 더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근엄한 복장의 마약수사대 경찰이 어디서 주먹만 한 크기의 애완견처럼 생긴 강아지를 데려옵니다. 아! 모든 상황을 눈치 챈 저는 바로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물론 그 거래는 아주 자연스럽게 성사되었죠.

3. 아프리카 니제르에서는 호텔에서 혼자 자고 있던 새벽 2시, 경찰이 문을 뜯고 들어왔습니다.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능숙하게 와장창 부수고 쳐들어와서는 저에게 수갑을 채웠습니다. 무슨 혐의냐고 물으니 남편 없이 혼자 여행하고 숙박하면 위법이라면서 남편을 데려 오라고 합니다. 그 밤에 제가 어디 가서 니제르 남편을 만들어 옵니까. 또 ‘빅딜’이라는 명목의 돈을 뜯깁니다. 문을 박차고 멋지게 들어 온 경찰 한 사람 한사람이 일당을 챙겨가더군요. 기진맥진해 호텔에 돌아오니 이번엔 호텔 매니저가 경찰이 부순 문짝을 고치랍니다. 제가 부순 것도 아닌데 제 돈으로 문짝을 고쳤습니다. 매니저도 경찰과 한패인지라 별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갖가지 통행세를 받아가던 경찰 등등 정복도 입고 증명서도 있고 확실히 현직 경찰이 맞는데 저에게 돈을 뜯어간 일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냥 당하지만은 않습니다. 현지에서 경찰이 이런 식으로 출몰하면 무조건 대사관을 찾아갑니다. 설마 다른 나라 대사관까지 경찰이 속이지는 못하겠지요. 외교적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도 골치 아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 한국에 와서 호돌이, 호순이 인형만 봐도 저는 너무나 안심입니다. 한국의 경찰이 너무도 자랑스러운 새가슴 피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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