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PD의 분쟁현장 르포
날씨와 취재
- 글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오늘 너무 춥습니다. 동지가 갓 지난 겨울이라 날이 빨리 어두워지고 해도 늦게 뜹니다. 날씨는 취재할 때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려면 각 나라의 날씨 체크는 필수입니다. 날씨가 더운 나라만 일 년 내내 주구장창 가있기도 하고 어떤 해는 추운 나라만 갑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겨울옷과 여름옷을 다 꺼내놓고 있습니다. 언제든, 어떤 날씨든 다 커버할 수 있게 말입니다.
겨울에 북유럽 취재를 가면 흑야입니다. 들어나 보셨나요? 흑야. 낮 12시나 되어야 어슴푸레 날이 밝는가 싶다가 2시쯤 되면 도로 깜깜해집니다. 스웨덴에서의 일입니다. 아침에 호텔서 일어나 일하러 나가려니 바깥이 아주 깜깜합니다. 오후 1시쯤 되니 슬며시 밝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어둑해집니다. 저는 밖이 깜깜하면 잠이 옵니다. 하루 종일 졸린 눈 비비며 헉헉대고 다녀야 하나 생각하니 너무 힘듭니다. 어두우니 건물 풀 샷도 못 찍습니다. 건물 전경은 편집할 때 꼭 필요한 장면입니다. 그래서 조명 설치하고, 창문에 불도 켜 달라 부탁해 간신히 분위기로만 풀 샷을 촬영합니다. 흑야인 나라를 취재가려면 조명에 아주 많이 신경 써야 합니다. 나름 조명에 힘껏 공을 들여 열심히 촬영해 간신히 방송을 내보냈는데… 시청자 게시판에(그때는 게시판 시절입니다) ‘제작진들아~ 왜 오밤중에만 촬영 댕기냐’는 지적의 글이 올라오곤 합니다. 억울합니다.
반대로 북유럽이나 러시아 등지의 여름은 백야입니다. 밤 12시가 되어도 환합니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 하루 종일 취재하다가 ‘왜 이렇게 피곤하지?’하며 시계를 보니 밤 12시. 그때도 해가 하늘에 떠 있습니다. 우리 제작진들은 환할 때 무조건 많이 촬영해야 합니다. 깜깜해지면 치안 문제도 있고 어두운 상황에서는 취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해가 떠 있을 때 부지런히 촬영해야한다는 강박증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만 보고 촬영하다가 오밤중까지 촬영하게 됩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아 백야구나’ 하는 현실감이 듭니다. 백야는 제작진들의 과로를 부릅니다. 그 와중에도 깜깜한 흑야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더운 나라로 취재를 갈 땐 많이 긴장해야 합니다. 각종 풍토병과 모기가 언제든 덤벼드니까요. 게다가 제3세계 나라들은 열악한 병원 시설 때문에 오히려 병원에 갔다가 병을 더 얻는 수도 있습니다. 촬영가서 병이라도 걸리면 그야말로 개점휴업입니다. 더운 걸로 치면 이슬람권 나라들이 정말 힘듭니다. 여성들에게 짧은 옷을 허용하지 않다보니 치렁치렁 여러 겹의 옷을 입거나 아바야나 히잡 같은 전통의상 차림을 갖춰야 합니다. 어떤 옷은 텐트를 입고 있는 것 같아서 땀띠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고온에 열사병과 일사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는 얼음주머니를 끌어안고 다니거나 무조건 에어컨 있는 곳만을 찾아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이라크 나제프라는 도시에 취재 갔을 때 온도계가 가리키던 숫자는 50도가 넘었습니다. 차의 에어컨이 돌아가도 제 기능을 못해서 더운 바람이 섞여 나옵니다. 그날 야외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눈앞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눈앞에 불이 왔다 갔다 합니다. 위험을 피하면서 저는 속으로 “이렇게 더운데 총탄에서 나오는 불이 더 온도를 높이는가보다”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더운 나라들을 지긋지긋하게 다녔어도 가장 더운 나라는 적도가 아니라 사막이 많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었습니다. 시골로 가면 냉장고도 없습니다. 찬 물이 먹고 싶어도 구할 곳은 없고, 따뜻한 물만 마셔야 합니다. 그러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얼음을 계속 리필 받으며 혼자 감격할 수밖에요. 얼음이 마치 부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얼음을 오도독오도독 깨물어 먹으면 아주 행복합니다. 그래서 한국 와서도 얼음을 컵에 담아 수시로 먹습니다. 왜 제가 얼음을 먹으며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즐기는지 아무도 이해 못합니다. 커피숍만 가도 공짜로 얼음을 더 달라 할 수 있는 나라야말로 선진국입니다.

그래도 저는 추운 겨울 나라들을 더 싫어합니다. 특히 겨울에 러시아로 취재 가는 것이 가장 싫습니다. 한번은 태국 방콕에서 취재하다가 갑자기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더운 나라 온다고 전부 짧은 소매의 옷들과 슬리퍼에 반바지만 챙겼다는 것입니다. 태국에서 출국하기 직전 급하게 방콕 시내 백화점을 갔으나 겨울옷을 찾지 못했습니다. 방법은 모스크바에 가서 사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는데 마침 흰 눈이 펄펄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망연자실 창밖을 보며 무조건 초스피드로 상점에 달려가 패딩을 구해야지 했습니다. 승무원이 제 차림을 보더니 놀라며 기내 담요를 주었습니다. 그날따라 더딘 입국심사. 공항 안도 추워서 덜덜 떨며 기다리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고, 드디어 공항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눈이 펄펄 옵니다. 앞만 보고 뛰어가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님도 깜짝 놀랍니다. 그래도 이제 택시를 탔으니 얼어 죽지는 않게 되었다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날씨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합니다. 우리나라가 4계절이라 좋은 새가슴 피디는 이 모든 날씨 역경을 간신히 넘기고 넘겨 아직 얼어 죽지도, 더워서 쓰러지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습니다. 올 겨울도 잘 버텨서 꽃피고 새 우는 봄을 맞이하자고요. ‘언젠가 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