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는 변호사의 뉴스 읽기
팬데믹에 가려진 아동학대
- 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토마스 휴즈는 혼자 여섯 살 먹은 아들을 키우고 있던 이십대의 아빠였다. 2019년 여름, 휴즈는 역시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던 엠마 터스틴을 온라인으로 만나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팬데믹이 선포되었다. 휴즈는 아들을 데리고 터스틴의 집으로 들어가 동거를 하기로 한다. 이는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전면봉쇄가 선포되면서 같은 가구원이 아니면 연인은 고사하고 가족 간에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동거는 그러나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휴즈의 아들 아서는 석 달 후인 6월 16일 오후, 뇌에 큰 상처를 입은 채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아이는 살아날 수 없는 것으로 판정되었고, 다음 날 새벽 생명유지 장치가 제거되었다. 아이는 머리를 어딘가 단단한 곳에 반복적으로 부딪힌 것으로 보였다. 쓰러져 있는 아서를 두고 터스틴은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휴즈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아이가 저절로 쓰러져서 머리를 부딪혔다고 했다. 휴즈가 부른 구급차가 도착하자 터스턴은 아이가 자기를 머리로 들이받고 차고 때렸으며 이를 말리자 마룻바닥에 머리를 계속해서 박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터스틴은 아서와 같이 살게 된 이후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거의 주지 않거나 소금으로 범벅을 한 음식을 주기도 했고, 혼자 두거나, 벽을 보고 오랜 시간 서 있으라고 시키기도 했다. 아이 몸에는 130군데가 넘는 상처가 있었는데 동거한 기간을 감안하면 거의 매일 한 군데 이상의 상처를 입힌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친아버지인 휴즈 역시 이를 말리기는커녕 동참했다. 휴즈의 어머니, 즉 아서의 친할머니는 아이를 자기에게 맡기라고 아들을 설득했지만 휴즈가 이를 거절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한 주변의 노력에 대해서 관련 기관들이 보인 반응은 적어도 팬데믹 이후 영국의 아동복지 및 보호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에게 멍이 심하게 들어있더라는 친할머니의 신고를 받고 복지사가 집을 방문하였으나 등에 남은 멍 자국은 터스틴의 아들과 장난을 치다가 생긴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협박을 섞어 미리 연습시킨 아이의 거짓말을 듣고 나서 복지사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서의 삼촌이 심한 멍 자국이 있는 아이의 등을 찍은 사진을 경찰에게 보냈으나 경찰은 복지기관이 이미 조사에 나선 이상 개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서의 친할머니는 아서가 다니는 학교에 이런 사실을 밝혔다. 학교 측이 아동복지기관에 사건에 대해 문의하자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죽기 바로 전 주에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으나 휴즈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학교 역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건을 조사하고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기관 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보 공유조차 되지 않았다. 즉,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론 난데없는 팬데믹 및 전면 봉쇄로 인해 여러 가지로 여건이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한 공간에 갇혀만 있어야 하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외부와의 교류를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적인 상황도 좋지 않아졌다. 부모 등 양육자의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아이가 처한 상황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아동복지기관에 신고 건수가 많아졌고 가뜩이나 팬데믹으로 혼란스러운 관련 기관의 업무 부담이 더 높아지게 되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재판 절차 역시 느려졌다. 이 사건도 최근에서야 선고가 내려졌다. 아서의 사망과 관련해 동거녀인 터스틴은 모살죄(murder,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살해한 경우)가 인정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석방 신청을 할 수 있으려면 최소 29년을 복역해야 한다. 친부인 휴즈는 고살죄(manslaughter, 살인의 고의는 없었지만 사람을 죽게 한 경우)가 인정되었다. 형기는 21년이다.
이 사건 이후 영국 정부는 아동보호 및 복지 서비스에 대한 전면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나섰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조력이 필요한 것인지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일단은 기대를 해보지만 이런 조사로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호들갑은 2000년의 빅토리아 클림비 때도, 2007년의 그 유명한 ‘베이비 P’ 즉 피터 코널리 때도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보호자에 의해 시달리다가 사망한 어린이들이다.
한편, 영국의 경우 이런 아동학대 사건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한 것을 본다. 지나치다 싶게 사건의 디테일을 보도하고 재판 과정에 대한 스케치도 세세하다. 심지어 한참 지난 사건의 경우에도 후속보도가 이어진다. 언론의 이런 유난한 보도 태도가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슬프게도 팬데믹 상황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사실은 전면봉쇄로 인해서 더 많은 아동 학대가 이뤄졌을 것이고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가정은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 곳이지만, 가정에서 아동이 학대를 받고 있다면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회구성원들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아동의 보호와 지원을 각 가정에만 맡기지 말고 사회구성원들이 경각심을 가지는 것, 미래의 사회구성원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국은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다만, 그리 마음을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