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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media of the world

웹 3.0의 평판 경제와 저널리즘의 미래

  •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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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한창이다. 웹 3.0이 2022년을 지배하는 핵심 키워드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그것의 실체를 둘러싸고 거친 토론이 오간다. 웹을 창시했던 팀 버너스리부터 웹 2.0을 정의한 팀 오라일리까지 논평과 해석을 거든다.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저널리즘 진영은 흐름을 관조하며 다음 스텝을 구상하기에 바쁘다.

웹 3.0이 언급되기 시작한 건 대략 3년 전이다.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공동설립자인 개빈 우드가 ‘왜 우리는 웹 3.0이 필요한가’1) 를 설파하면서부터다. “오늘날의 인터넷은 파괴됐다”라며 강렬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그의 목소리는 2021년 들어 진폭이 커졌다. 마치 인터넷에 지진이 난 것 마냥 온통 웹 3.0을 이야기하고 웹의 다음 세대라 부르짖는다. 모르면 ‘뒤처진 혁신가’라고 손가락질 받을 분위기다.

개빈 우드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웹 2.0이 성장시킨 빅테크를 지금의 모습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거였다. 독점하고, 감시하고, 지배하는 권력을 견제하지 않으면 모든 행위자들이 부패와 부정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참여, 공유, 개방을 우선했던 웹 2.0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페이스북, 구글 같은 중개 플랫폼들의 독점을 낳았다고 한탄했다. 웹 2.0이라는 이름으로 중개 플랫폼이 지배적 위상을 차지하는 경제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웹 3.0을 떠올린 이유다.

상상할 수 있듯, 중개 플랫폼 없는 거래의 기반 기술은 블록체인이다. 그 안에 깃든 핵심 철학은 분산이다. 이름 하여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분산적 자율 조직이다. 개인 간 거래와 교환에 신뢰를 보증할 수 있는 기술 체계를 삽입함으로써 중개 플랫폼들의 개입을 차단하는 접근법이다. 국가나 빅테크 플랫폼의 중개 역할 없이 개인 간의 거래와 교환에 신뢰 값을 부여할 수 있다면 플랫폼 종속이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된다.

‘분산’은 저널리즘 생태계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열쇳말이었다. 빅테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쟁취해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새로운 수익모델의 기초를 닦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NFT는 그 시발점이었다. 빅테크 플랫폼과의 기술 격차로 주력 수익모델이었던 광고를 빼앗긴 언론사들은 NFT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수십 년 전의 1면 기사나 칼럼을 NFT로 판매해 독자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케빈 루즈는 칼럼 한 건으로 무려 56만 달러를 벌어들여 기부하기까지 했다.2) 거대 기술기업의 광고나 구독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충성 독자들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가 확인된 셈이다. 너도나도 NFT에 올라타 수익 창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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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널리즘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흐름은 따로 있다. 웹 3.0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웹 3.0이 마케팅용 유행어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밀고 나아가고자 하는 거대한 조류를 관찰해야 한다. 바로 주목 경제의 퇴각이다. 웹 2.0은 주목 경제의 토대 위에 건설되고 작동했다. 우리 모두가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보의 풍요 시대를 열었다. 정보의 풍요는 복제의 풍요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심의 희소화였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용자들의 제한된 관심을 얻기 위해 과잉경쟁이 일상화했고,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정보 생산이 보편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이 빈틈을 비집고 허위조작정보도 난무했다. 웹 2.0 시대 성공한 플랫폼들은 한정되고 희소한 사용자들의 관심을 획득하려고 신뢰 자원을 일부 희생하기까지 했다. 유튜브가 허위조작정보의 근원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획득한 관심과 부의 양이 상호 교환되는 ‘주목 경제’의 패러다임 안에 존재하기에 여러 폐해에도 불구하고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웹 3.0은 주목 경제와의 결별을 상징한다. 이를 ‘평판 경제’로 대체하겠다는 시대정신3) 과도 맞물려 있다. 어뷰징, 그럴싸한 베끼기, 자극적 스토리로는 평판 경제의 패러다임 안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NFT를 통해 경매에 붙여졌던 저널리즘의 생산물들은 그 자체로 희소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원천성이 없는 스토리에 가상화폐 지갑을 열 개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웹 3.0 경제시스템에서 생산자의 명성과 평판은 그 어느 때보다 희소하게 간주된다. 평판과 명성의 희소화, 그것이 웹 3.0의 근간인 것이다.

웹 3.0은 일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탐욕을 실현하기 위한 기득자본의 용어로 남겨질 수도 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와 잭 도시의 논쟁,4) 그리고 팀 오라일리의 논평5) 은 여전히 웹 3.0이 안정적인 기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웹 2.0에 통합될 운명이라는 해석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충분히 귀에 담아야 할 목소리이자 사상들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물줄기가 흘러가는 방향이다. 주목 경제와 그것의 경제적 교환법칙이 교정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했다는 문제의식, 이것만큼은 놓쳐서는 안 된다. 저널리즘은 원천성과 신뢰의 가치로 백여 년을 버텨왔다. 참여, 공유, 개방이 이러한 저널리즘의 가치를 더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약 20여년 후 나타난 결과는 정반대였다.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정보가 사용자들의 주목을 흡입하며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포털에서 더 많은 수익을 얻어내기 위해 저널리즘 윤리는 내팽개쳐졌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희소성을 재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질문은 잠시 미뤄두자. NFT 또한 디지털 원본 자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성을 입증하는 장부의 암호화한 인증 코드(토큰)를 사는 것이기에 완전한 배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웹 3.0은 저널리즘엔 희망이자 과제다. 저널리즘 본연의 목적을 지향할 때, 독자들과 진정성을 교환하며 대화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해질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웹 3.0이 실패한 프로젝트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 배태된 시대정신만큼은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